'죄 많은 소녀' 감독 "사람 사는 사회, 다층적인 모습 그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상실, 바로 사람이 없어질 때이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대처하는 방식과 심리를 면밀하게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7일 종로구 팔판동에서 만난 영화 '죄 많은 소녀'(13일 개봉)의 김의석(35) 감독은 상실과 죄책감을 화두로 꺼냈다.
이 작품은 여고생 경민이 실종된 뒤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같은 반 친구 영희(전여빈 분)가 가해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영희부터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담임, 반 친구들까지 주변 인물들은 다양한 형태로 소녀의 죽음에 반응한다.
감독은 수년 전 친한 친구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냈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2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극 중 인물과 이야기는 모두 허구지만, 당시 느꼈던 감정은 날 것 그대로 담아냈다.
감독은 "그 사건 이후 꽤 시간이 흐른 뒤 친구를 잃었던 시간으로 다시 들어가 그때의 감정을 생생하게 복기하려고 노력하면서 썼다"면서 "(친구의 죽음이) 제 탓이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극 중 캐릭터들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저마다 각기 다른 정도의 죄책감을 느낀다.
"영희는 타인들에게 가해자로 의심을 받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가장 의심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다른 인물들도 (죽은 아이와) 친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죄책감이라는 동력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는 주변 인물에 시선을 골고루 나눠준다. 감독은 "원래 목표는 주인공 없이 주변 인물 모두가 보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실제로도 한 프레임 안에 한 명만 넣지 않고 가까이 있는 인물과 멀리 있는 인물을 모두 넣어서 사람 사는 사회의 다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층위도 폭넓고 다채롭다.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런 감정을 벗어나려 각자의 방식으로 발버둥 친다. 경민의 엄마는 딸의 실종에도 침착하게 행동한다. 그러다가도 영희 곁을 무섭게 맴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엄마가 자신의 무관심으로 딸을 잃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그는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 적이 없는 사람인데, (딸의 죽음으로) 삶이 한 번에 전복되다 보니 격렬하게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경민이 왜 죽었는지, 누가 가해자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주변 인물들이 떠올리는 경민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짐작할 뿐이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이유를 학업 스트레스, 이렇게 통계로 나누는 것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겪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았죠. 그래서 유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는 '동성애 코드'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도 등장한다. 감독은 그러나 "어떤 문화나 사회 현상을 가지고 와서 조립하듯 만든 장면이 아니었다"면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장편 데뷔작인 김 감독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출부 출신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구해줘!'로 제10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초청됐고, '오명'으로 제20회 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도 초청된 실력파 감독이다.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순교'(가제)는 올해 부산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의 공식 프로젝트 29편에 포함됐다.
그는 "재미있으면서 한 번에 소비되지 않는, 쓸모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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