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고성' 오간 인천 첫 퀴어축제장…행사 무산
기독교총연합회 등 축제 반대단체 1천 명 집결…개최 저지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성 소수자 단체가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려 했으나 기독교 단체 등이 반대 집회를 열면서 양측의 마찰이 빚어졌다.
경찰이 많은 경비 병력을 동원해 축제 주최 측과 행사 반대단체를 분리했지만, 곳곳에서 몸싸움과 고성이 오가며 예정된 축제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 일대에는 8일 오전 일찍부터 기독교 단체와 보수 성향 시민단체 등 1천 명(경찰 추산)이 몰렸다.
앞서 이 광장에서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기독교총연합회 등은 행사 개최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퀴어문화축제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성 소수자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알리는 행사다.
2000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지만, 일부 단체가 성 소수자에 혐오감을 드러내며 행사 개최에 반발해 매년 논란이 됐다.
이날 축제에는 성 소수자 단체와 진보 시민단체 관계자 등 300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애초 주최 측인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1천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행사 참가자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반대단체에 수적으로 밀리다 보니 주최 측은 축제를 열 북광장을 선점하지 못했고 인근에서 흩어져 서로 발언을 하며 행사 반대 집회 측을 비판했다.
이날 오후 6시까지 광장 일대에서 성 소수자 인권을 알릴 각종 홍보부스 40여 개를 운영하려 했으나 부스는 설치조차 하지 못했다.
축제 반대단체 관계자들은 '동성애 법제화 반대'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행사장에 진입하기 위해 광장 곳곳에서 경찰과 승강이를 벌였다.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하나씩 든 채 행사장 진입을 시도했고 일부에서는 고성과 함께 욕설이 오갔다.
이들은 "이번에 인천에서 퀴어축제가 열리면 앞으로도 계속 열릴 것"이라며 "행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반대단체 회원들은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다가 행사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다른 회원들은 축제장에 난입해 바닥에 드러누워 행사 진행을 막기도 했다.
북광장 인근 인천 송림초등학교 학부모들도 선글라스를 끼거나 마스크를 쓴 채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행사장에서 펼쳐 보이며 행사 반대 시위를 했다.
이날 오후 들어 북광장은 줄지어 선 경찰 병력을 사이에 두고 주최 측과 행사 반대단체 둘로 나뉘었다.
행사에 앞서 경찰은 7개 기동중대 550명과 교통경찰관 120명을 북광장 주변에 배치했다.
기독교 단체는 '대한민국 살리기 제1회 인천예수축제'를 광장 한쪽에서 열고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주최 측은 이날 오후 예정된 축제 하이라이트인 거리 퍼레이드를 시도 하려 했으나 반대단체 회원들에게 차량이 둘러싸여 차량을 이동하지 못했다. 성적 다양성을 홍보하는 각종 공연도 무산됐다.
그러나 축제 참가자들은 광장 다른 쪽에서 미리 제작한 소형 깃발을 서로 나눠주며 마스코트 인형을 세워둔 채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서로 연대발언을 하며 성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 달라고 목소리도 높였다.
성 소수자 부모 모임 회원들은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그래 우리 같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대단체 회원들을 향해 무언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앞서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이번 축제를 위해 동인천역 북광장을 사용하겠다며 승인 신청서를 인천시 동구에 냈다가 사실상 거부당했다.
동구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려면 안전요원 300명과 주차장 100면이 필요하다며 이를 먼저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행사에 따른 안전요원과 주차장 마련 기준은 어떤 조례에도 없고 광장 사용 신청 자체를 받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동구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인천시는 10월께 행정심판위원회를 열고 해당 안건을 상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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