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제복입은 시민'…독일, 장병에 시민적 기본권 보장
"불법명령은 안따른다"…옴부즈맨 통한 의회의 견제
연방군 내 법치교육 일상화…장성도 토론식 수업 참여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제복 입은 시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문구다. 경찰 등 공권력 내부에서 시민의 입장으로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미로 주로 쓰여왔다.
애초 이 문구는 독일 연방군에서 나왔다. 독일에서는 군인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당연히 가진다는 뜻이다. 독일군 특유의 조직과 문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문구다.
서독이 1954년 연방군을 창설한 데 이어 위해 1956년 징병제를 도입하면서 이런 개념이 성립됐다.
연방군 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확고히 하기위한 것이다. 나치 시대에 군이 나치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이 됐다는 통렬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연방군의 교육 제도와 연방군에 대한 견제 장치는 이런 원칙을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2011년 징병제가 폐지되는 등 연방군의 환경이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제복 입은 시민'은 여전히 연방군을 표상하고 있다.
◇ 군옴부즈맨, 의회의 군 견제 = 군옴부즈맨은 연방군의 시민적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연방의회가 군 권력의 오용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1959년 도입됐다. 연방기본법 45조에 따라 연방의회는 추천 및 투표 절차를 거쳐 정무차관급인 군특명관을 임명한다.
군특명관의 임기는 연방의원보다 1년이 긴 5년이다. 독립성을 보장하는 취지에서다.
군특명관은 장병들의 애로사항을 접수한다.
폭력뿐만 아니라 복지까지 광범위한 데 초보적인 인권문제보다는 주로 복지와 성희롱,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많다. 군특명관이 접수하는 민원 건수는 연간 5천 건 안팎에 달한다.
군특명관은 연방군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한다. 이런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군특명관은 조사권을 갖고 있다.
군특명관은 연방의회에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연례보고서를 제출한다. 장병들의 민원 사항을 다룰 뿐만 아니라 연방군에 대한 지원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재 군특명관인 한스-페터 바르텔스는 2016년 연례보고서에서 장병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연방군의 장비 및 재원 확대를 요구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테스크포스가 이 제도를 살피기 위해 독일을 찾아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두 차례에 걸쳐 군옴부즈맨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군 인권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 일상화된 군내 민주주의 교육 = '제복 입은 시민'의 원칙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방군의 교육시스템은 상당히 촘촘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뿐만 아니라 기본권과 관련된 법규에 대해 상세히 교육이 이뤄진다.
연방군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을 지키고, 연방군 내 개인 역시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연방군은 이를 '내적지휘'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한다.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지는 기관 명칭이 '내적지휘센터'이다.
이곳에서 일반 병사와 장교, 장군 등이 토론식 수업에 참여한다.
특히 연방군은 상사의 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 불법적인 명령을 이행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불법적인 명령이 낳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연방군 장교들이 임관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처형 장소를 방문하는 전통은 이런 맥락에서 세워졌다.
또한, 연방군은 신(新)나치주의자와 극단 이슬람주의자 등 헌법에 반하는 장병을 철저하게 퇴출한다. 군 방첩기관인 군사정보부(MAD)가 반사회적인 장병들을 조사해 솎아낸다.
더구나 연방군은 지난해 7월 이후 모든 지원자를 대상으로 보안 검사를 실시해 극단주의자를 걸러내고 있다.
◇ 대체복무에서 엿보는 '민주적 원칙' = 독일이 일찌감치 인정한 대체복무에서도 민주적인 원칙을 엿볼 수 있다.
독일은 징병제와 함께 대체복무를 함께 시행했다. 연방기본법에도 '양심에 기초해 무기사용과 관련된 병역의무를 거부한 사람은 대체복무를 요구받는다'고 명시됐다.
대체복무 영역은 의료 및 복지시설이 주를 이뤘다. 해외봉사도 대체복무로 인정됐다.
징병제 실시 당시인 1960년대에 18개월에 달했던 복무 기간은 2002년에 9개월로 줄었고, 징병제가 폐지된 해인 2011년 1월부터는 6개월로 단축됐다.
특히 징집 대상자 가운데 대체복무 인원이 군 복무 인원보다 2배 이상으로 많을 정도로 대체복무가 폭넓게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 선수와 예술가들의 병역 이행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독일 아마추어 스포츠의 경우 연방군과 경찰이 상당수의 엘리트 선수들을 직업군인과 경찰로 채용해 우리나라와 달리 애초 병역특례의 필요성조차 없었다.
독일에서 징병제 당시 대체복무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통일 이후 안보 상황에 여유가 있었던 점도 한몫했다.
동서독 분단 시절 냉전이 한창일 때 서독의 병력은 50만 명, 동독의 병력은 17만 명에 달했다. 통일 이후 급격히 병력이 줄어들면서 현재는 18만 명에도 못 미친다.
다만, 최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등으로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 일각에서는 징병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가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 데다, 기성 정치권에 점점 등을 돌리는 보수적 유권자를 겨냥한 수사일 뿐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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