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피해자' 칠레 전 대통령, 유엔 인권대표 취임
바첼레트 "내 지지 필요한 곳에 함께 있도록 최선"
"미국 등 각국 지지 끌어낼 것" vs "협상가 스타일에 우려"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군부 독재 정권의 고문 피해자인 미첼 바첼레트(66) 전 칠레 대통령이 유엔 인권 업무를 책임지는 인권고등판무관(인권최고대표)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올 7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이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후임으로 바첼레트 전 대통령을 지명했을 때 193개 회원국은 열렬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요르단 왕족 출신인 자이드 전 대표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을 비판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대립했다.
미국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이스라엘을 편파적으로 비판하고, 인권 논란이 있는 국가들이 인권이사회를 이용한다며 결국 탈퇴했다.
바첼레트 전 대통령이 유엔 인권최고대표 후보로 물망에 올랐을 때 유엔 주변에서는 그의 신중하고 대화를 우선시하는 성격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지지를 끌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바첼레트 대표는 3일(현지시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희생자들과 인권 활동가들이 나의 지지를 기대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나의 지지가 필요할 때 그들과 함께 거기에 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고문 피해자이기도 하다. 가족 역시 칠레 군부 독재 정권의 피해자였다. 공군 장성이었던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는 1974년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숨졌다.
피노체트 정권은 1973년 군부 쿠데타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사회주의 정당에서 활동하던 바첼레트 대표는 스물세 살이었던 1974년 어머니와 함께 체포, 투옥돼 역시 고문을 당했다.
호주와 옛 동독에서 망명 생활을 했던 바첼레트 대표는 1979년 칠레로 돌아와 의학을 전공한 뒤 고문 피해자 가족의 어린이들을 치유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중도 좌파를 이끄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바첼레트 대표는 라고스 대통령 시절 남미에서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임명됐고 2006년에는 칠레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첫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유엔여성기구 총재로 활동하다 2014년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의 첫 공식 외부 활동은 이달 10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39차 총회다.
일각에서는 바첼레트 대표의 협상가적 기질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오히려 한계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을 앞세워 국제 인권무대에서 세 결집에 나선 중국은 올 3월 인권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출했는데 절대 가치인 인권을 '상호 호혜' '다양성 존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결의안은 앙골라, 부룬디, 수단, 짐바브웨 등 20개국이 이름을 올렸고 47개국 중 28개국이 찬성해 채택됐다.
중국은 최근 신장 위구르 지역의 집단 구금 사태를 제기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보고서가 날조됐다고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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