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우가 추억까지 앗아가네'…침수피해 주민 복구 구슬땀
침수 피해당한 광주 남구 주월동 주민·상인…복구에 일주일 이상 걸릴 듯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이것이 우리 아들 군 표창장이고, 요건 손녀들 어릴 적 사진이야. 생각지도 못한 폭우가 우리 가족 추억까지 앗아가네…."
28일 광주 남구 주월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날 내린 국지성 호우에 물에 잠긴 지하실 세간살이 사이에서 젖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주민의 입에선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곳은 전날 시간당 6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고지대에서 밀려 내려온 급류와 내린 빗물에 잠겼다.
아파트 지하실을 물론, 1층 계단 성인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면서 지하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주민들의 소중한 살림살이가 모두 물에 젖는 피해를 봤다.
주민들은 급류처럼 빗물이 아파트 단지를 덮치자, 손쓸 방법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7년여 전에도 태풍의 여파로 한차례 침수피해를 본 전력이 있어, 올해도 태풍을 걱정했지만, 무사히 넘겼던 터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국지성 호우의 기습으로 아파트 단지가 물에 잠기자 주민들은 당혹스럽고 허탈한 마음에 주저앉았다.
소중한 살림살이를 물속에 그대로 둘 수 없기에 주민들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이 아직 빠지지 않은 지하실로 들어가 안에 보관 중이던 집기를 밖으로 빼냈다.
타지 생활하는 자녀의 살림을 지하실에 보관해줬다가 몽땅 못쓰게 된 이귀님(74·여)씨는 전기밥솥, 컴퓨터, 양파, 자녀들이 효도하려고 사준 전기매트 등을 힘겹게 빼내며 연신 "이걸 어째"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씨는 "폭우가 내렸을 때 아파트 입구만 모래주머니로 막았더라면, 피해가 덜했을 텐데"라고 말하며 '사후약방문'으로 모래주머니를 입구에 쌓아 올리는 구청 관계자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내와 함께 물에 젖은 살림살이를 하나씩 빼내는 서순남(69)씨는 흙탕물에 젖은 아들의 군 표창장과 손녀들의 사진들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닦으며 아까워했다.
서 씨는 아내에게 "이건 말려서라도 살려야지"라고 말하며 가족의 추억을 가장 먼저 챙겼다.
전날 쏟아지는 빗물에 하천처럼 변한 골목길의 상점도 물이 빠지고 복구가 시작됐다.
상인들은 물에 젖어 못 쓰는 물품을 골목길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구청 관계자들은 청소차로 수십 번 퍼다 나르며 부지런히 침수 물품을 거리에서 치웠다.
들이닥친 빗물에 흠뻑 젖은 의자, 탁자 등 가게 집기도 밖으로 꺼내 고개를 내민 햇빛에 바싹 말렸다.
31사단 군 관계자들도 예비군 훈련 임무를 뒤로 미루고 현장에 나와 복구를 도왔다.
현재까지 광주 남구에서만 전날 폭우로 63곳 상가·주택이 침수피해를 봤고, 차량 20여대가 물에 잠겨 고장 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구청 관계자는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침수피해를 복구하는 데만 최장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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