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파워' 앞세운 트럼프, 무역협상서 잇단 성과…다음은 중국
멕시코와의 나프타 개정안에도 '아메리카 퍼스트'
자동차·지재권·일몰조항 등 관철…G2 무역전쟁 총력전 예상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멕시코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에 합의하면서 통상부문에서 소신대로 또 하나의 성과를 거뒀다.
27일(현지시간) 합의된 사안들을 기존 협정과 비교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기치로 내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완연하다.
우선 미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자국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요구를 관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의 무역적자 690억 달러(약 76조6천억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만큼 이 부문을 우선 해결과제로 삼아왔다.
미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관세면제를 받으려면 자동차 부품의 75%를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생산하도록 했다. 이른바 '원산지 규정'으로 불리는 이 조항에 따라 부과되는 종전 기준은 62.5%였다.
새 합의는 아울러 자동차 부품의 40∼45%를 최저 시급 16달러(약 1만8천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가 생산하도록 강제했다.
자동차 노동자의 평균 시급이 3.5달러(약 3천900원) 미만인 멕시코의 사정을 볼 때 미국에 유리한 합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새 조항들이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를 아시아에 빼앗기지 않고 국내에서 만들기 위한 부양책이라고 보도했다.
AFP통신은 고임금 일자리를 유지하고 해외로 생산이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협정에 사후 불만이 있을 때나 자국 환경이 변할 때 일방의 요구에 따라 개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도 합의에 포함됐다.
애초 미국은 5년마다 재승인하는 일몰조항을 도입하길 원했다. 이는 캐나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 산업계의 반대로 관철되지 않았으나 미국 정부는 그에 준하는 효력을 지닐 양보안을 따냈다.
합의에 따르면 개정된 협정은 6년마다 재검토되는데 향후 10년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협정은 폐기된다.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무역전쟁과 더불어 민감하게 거론되는 지식재산권 부문에서도 진전을 봤다.
합의에 따르면 관리들은 출입국 항구에서 모조품으로 의심되는 물품의 이동을 억제할 권한을 지니게 됐다. 관람객이 캠코더로 촬영한 영화를 실질적으로 제재하고 위성이나 케이블 TV 신호를 중간에 가로채는 절도에 민사책임을 묻거나 형사처벌할 수 있는 방안도 포함됐다. 그 외에 저작권, 특허, 면허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강화됐다.
미국은 자국이 강세를 보이는 농업 부문에서는 수출 보조금을 허용하지 않고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제 통상질서를 새로 쓴다는 의미를 담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특색으로 강조한 노동·환경 기준도 나프타 개정안에 포함됐다.
합의에 따르면 멕시코는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해야 하며 공기 질, 해양생태계를 보호할 의무도 지니게 된다.
TPP 탈퇴, 유럽과의 원칙적 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합의에 이어 나프타 개정까지 윤곽을 잡은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초점은 중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나프타와 TPP 등 다자 무역협정을 미국에 나쁜 거래라고 비난해왔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TPP에서 탈퇴했고 나프타는 개정협상에 착수해 자국의 이익을 확대한 개정안을 관철했다.
아직 당사국 의회 비준과 캐나다의 참여 여부가 남아있긴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이날 합의로 '미국 우선주의'라는 약속 하나를 더 진전시킨 셈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서도 대두(콩), 천연가스 수출을 늘리고 관세를 인하하는 쪽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또한 한국만 무역흑자를 누리는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규정하고 폐기까지 운운하다가 결국 개정협상을 개시, 올해 3월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잇따른 무역협정의 개정합의로 탄력이 붙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한결 홀가분하게 집중할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미국 언론들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9월 2천억 달러(약 223조원) 규모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25%의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포함해 본격적인 '가을 대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색채가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중국이 미국을 돼지 저금통 삼아 약탈한다'는 등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이 국가안보 현안이 될 것임을 시사해왔다.
그 기조를 반영하듯 백악관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지식재산권, 기술이전 강요 등 중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포함해 공정, 균형, 호혜를 달성해야 한다고 무역전쟁의 지향점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위해 고율관세 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유럽·일본 등 동맹국과의 압박 공조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언론들은 미중 갈등이 고조될 것이 분명하다며 중국과의 무역전쟁이 패권 다툼 차원에서 해를 넘어 내년 말까지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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