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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유해발굴은 억압된 사회적 기억의 회복"
노용석 교수 '국가폭력과 유해발굴…'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반도에 훈풍이 불면서 남북·북미 간에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군인 유해 송환과 발굴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한국전쟁 기간에는 군인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인도 희생됐다. 정부가 1955년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자는 99만 명. 이 가운데 약 12만9천 명이 학살됐다.
영남대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을 주도한 노용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통계 근거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학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신간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는 노 교수가 한국현대사의 그늘이라고 할 만한 민간인 유해발굴을 주제로 발표한 논문을 뼈대로 완성한 책이다.
과거사 청산 암흑기를 거쳐 1999년 이후 본격화한 유해발굴 사례를 소개하고, 유해를 찾아내는 작업의 상징적 의미를 고찰했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유해발굴이라는 행위에 내포된 의례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는 국가폭력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 공식적 사회 담론으로 자리 잡는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그 죽음이 해당 사회가 설정한 의례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광주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유해발굴은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이 정치적으로 공표된 뒤에야 필요성이 인정됐다. 이전까지는 5·18 피해자가 비공식적 기억의 범주에 머무는 '유령'쯤으로 인식됐다.
저자는 '이적'(利敵)이라고 낙인찍혀 한을 품은 채 산천에 버려진 유해를 수습하는 작업은 죽음을 처리하는 관습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역설한다. 유가족이 보면 유해발굴을 통한 장례는 피해자 육신에 안식을 주는 중요한 의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민간인 유해발굴은 진상규명과 과거사 청산은 물론 기념 혹은 위령까지 포괄하는 사업"이라며 "발굴된 유해는 새롭게 드러난 증거물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사회적 기억의 회복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유해발굴이 확대된 것은 내셔널리즘 강화 혹은 국가 정체성의 새로운 확립과 연관성을 가진다"며 "가장 '보수적'인 인간의 뼈를 개혁과 변동의 상징으로 만들려면 사회 전체가 희생자를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저자는 특별법이 제정된 사건만 중시돼 죽음이 위계화하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기념이 반공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는 거대한 탑과 공원을 동반한 '양민'성의 부각이 아니라 국가주의를 넘어서 비공식적 역사 속에 잠재된 수많은 기억을 자유롭게 추념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지니. 320쪽. 2만5천원.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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