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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말'에서 '바보들의 행진'까지…신촌의 변화를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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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말'에서 '바보들의 행진'까지…신촌의 변화를 한눈에
서울역사박물관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시회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울 신촌의 역사를 훑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의 중요한 부도심 중 하나인 신촌을 재조명하는 '청년문화의 개척지, 신촌' 전을 22일부터 10월 21일까지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조선 건국 당시 무악산(현재의 안산), 지금의 신촌 일대는 유학자이자 풍수지리가였던 하륜이 새로운 수도로 강력하게 주장한 지역으로, 이때부터 '새터말'(新村)이라 불렸다.
조선왕조는 이 지역에 연희궁(衍禧宮), 서잠실(西蠶室), 의열묘(義烈墓) 등을 두어 중앙조정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도록 했다.
1917년 연희전문대학과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가 이전한 이후 신촌은 대학촌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서강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명지대학교 등 인근의 크고 작은 대학이 자리 잡으면서 신촌은 젊음의 문화를 이끌었다.
서구 근대 학문과 사상이 유입되는 창구가 된 것은 물론이고 원두커피, 언더그라운드 음악, 패션, 록카페, 사회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새롭고 대안적인 문화가 시도됐고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유신체제 아래 청년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 제작된 곳도 신촌이었다.


1970~90년 격동기에 신촌은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특히 1987년 연세대 앞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랬던 신촌이 2000년대 들어 활력을 잃어갔다. 홍대와 이태원이 새로운 청년문화 중심지로 등장하고 지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청년들이 떠나면서 신촌은 고유의 색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신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청년들이다. 젊고 창의적인 청년들이 서대문구청에서 진행하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다시 신촌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전시는 무료이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일·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02-724-0274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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