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日침략전쟁 잔재 '죽음의 철도' 세계유산 추진…명칭 논란
일본, 명칭 변경 압박한 듯…공청회 참석자 절반 이상 유지 의견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의 국경을 맞댄 태국 중서부 깐짜나부리에는 2차대전 당시 일제가 미얀마(버마)와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가 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죽음의 철도의 원래 명칭은 '버마 철도'다. 그러나 이 철도 건설에 수십만 명의 연합군 전쟁 포로와 동남아 출신의 민간인 부역자들이 동원됐고, 이 가운데 12만여 명의 전쟁포로와 9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으면서 죽음의 철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처럼 일제 침략전쟁의 쓰린 역사가 담긴 죽음의 철도를 태국의 첫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과정에서 이 철도에 대해 어떤 명칭을 사용할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16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깐짜나부리에서 열린 관련 공청회에는 죽음의 철도 인근 4개 행정구역에서 450여 명의 주민과 단체 대표가 참여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공청회에서는 '죽음의 철도'라는 이름을 사용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하면 일본과 불필요한 마찰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빚어졌다.
일본 측의 우려를 반영해 침략전쟁 만행을 떠올리게 하는 철도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태국지회의 제안을 두둔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열린 공청회에서 보본바떼 룽러지 ICOMOS 태국 지회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에 이 철도가 '죽음의 철도'로도 불린다는 점을 언급하겠지만,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 관리들이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며 죽음의 철도 명칭 사용과 관련해 일본 측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깐짜나부리 주 정부 문화담당 국장인 삐순 찬실프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의 주된 목적은 일본 군인들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에게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며 '2차 대전 역사의 철도'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공청회 참석자 절반 이상은 역사적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죽음의 철도'가 공식 명칭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교도 통신이 전했다.
한 참석자는 "이미 잘 알려진 이름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일본의 과거 만행을 지적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ICOMOS는 추후 이 철도의 공식 명칭을 확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 예정이며, 9월 이후 세계 문화유산 등재 신청서 초안을 태국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태국 정부는 2020년 초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사무국에 최종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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