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대표 "트럼프, 이전 정부와 달리 인권 개의치 않아"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 적대감 표시는 폭력 조장과 같아"
이달말 퇴임 자이드 "유엔, 침묵해서는 존경받을 수 없어"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전 정부와 달리 인권 옹호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언론에 대한 적대감 표시는 폭력을 선동하는 것과 같고, 다른 나라에서의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이드 대표는 이날 영국 진보 일간 가디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 '스트롱맨'들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한편 시리아 내전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을 촉구했던 자이드 대표는 이달 4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앞서 자이드 대표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연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자이드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옹호하던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 대사를 지명하지 않은데 이어 결국 탈퇴를 결정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인권에 관한 부족한 헌신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년 유엔 인권최고대표 자리에 오른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1월 이후 미국 국무부와의 접촉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전했다.
자이드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반복되는 지적을 "공공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활동은 언론인들이 그들의 일과 관련해 해를 입거나 잠재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도록 할 수 있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이는 폭력의 선동과 같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그 같은 발언은 다른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언론 탄압에 나서도록 하는 전시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자이드 대표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사례로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한 독립언론을 폐쇄한 사실을 들었다.
자이드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동 격리수용'을 포함한 이민정책과 소수집단에 대한 그동안의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자이드 대표는 "심한 편견과 맹목적 애국심에 고통받아온 이들에 대한 발언을 보면 20세기에 정치적 이득을 위해 취약한 이들에 대한 편견 등이 부추겨지던 시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1차 세계대전 직전과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시기인 1930년대를 언급했다.
자이드 대표는 취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권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 기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시리아나 예멘 등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으며, 유엔의 우선순위에서 인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 3월 유엔 안보리가 시리아 인권 침해 상황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하려 했으나 시리아 정권을 비호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일이 이같은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초 회의는 자이드 대표 주재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는 회의 개최 여부에 대한 절차 표결을 요청했다.
이에 진행된 표결에서 회의 개최에 찬성한 이사국은 8개국으로, 9개국 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산됐다. 시리아 인권 상황에 대해 보고하려던 자이드 대표 역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이드 대표는 "이는 시리아에서의 인권 상황 보고를 위해 9개국의 표를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서방세계의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유엔 안보리에서 시리아를 논의하면서 인권 대신 무엇을 논의할 수 있나. 다마스쿠스의 미술품? 웃기는 얘기다"라고 비판했다.
유엔의 한 서방국가 외교관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전임자에 비해 인권에 대해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이기를 원했지만 그렇지 못하면서 자이드 대표의 발언이 힘을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외교관은 "자이드 대표와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말한 것이 완전히 분리됐다"면서 "이로 인해 (자이드 대표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자이드 대표는 자신이 30대 초에 유엔에서 일할 때 유엔이 세르비아에서 무슬림(이슬람 교도) 소수민족에 대한 대량 학살을 막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어떤 정치적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인권에 대해 얘기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자이드 대표는 "유엔이 침묵하던 시기가 있었고 이로 인해 유엔은 분쟁 당사자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면서 재앙이 발생했다"면서 "침묵해서는 존경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이드 대표는 자신의 후임자로 공식 임명된 미첼 바첼레트(66) 전 칠레 대통령에게 용기 있게 행동하면서 재임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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