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캔버스에 쏟아낸 슬픔과 기쁨
화가 이경신, 20여년전 할머니들 미술수업 회고한 에세이 '못다 핀 꽃'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여기 봉오리를 터뜨리기 전 목련꽃이 꼭 내 신세 같네. 제일 이쁠 적에 제대로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것이 나랑 닮았어."
김순덕 할머니는 감색 바탕에 목련이 수 놓인 자수 천을 꺼내 보였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주변 버려진 병풍에서 떼어낸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수천을 펼친 뒤 물감판을 열었다. 생천 위 목련꽃 뒤에서, 오래전 경남 의령군 산골에 살던 열일곱 살 소녀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그림이 된 '못다 핀 꽃'은 20여 년년 전 나눔의 집을 찾은 화가 이경신과 할머니들의 미술수업에서 탄생했다.
같은 제목의 신간(휴머니스트 펴냄)은 1993년부터 약 5년간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작가가 당시를 돌아보며 쓴 에세이다.
미대를 막 졸업하고서 '화가 인생의 출발점'에 섰던 이경신은 나눔의집에서 한글을 가르칠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광주로 달려갔다. 한글 수업은 곧 미술 수업으로 바뀌었다.
"이 나이에 뭔 그림이여" "치아라∼머리 아프다"며 시큰둥하던 할머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선생, 나 이런 것 그려보고 싶어지데?"라고 제안할 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책은 할머니들이 깊은 상처를 캔버스 위에 조금씩 꺼내놓으면서 고통스러워하던 순간, 완성된 그림 앞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복원해낸다. 특히 유난히 과묵하던 강덕경 할머니가 '빼앗긴 순정'을 완성해가는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출판사는 "할머니들 그림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한일 과거사, 여성 인권 문제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기폭제 역할을 했다"라면서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진 과정과 의미를 최초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304쪽. 1만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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