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냉장고·선풍기까지"…쓰레기장으로 변한 청정 산간 계곡
"1천원 아끼자고 종량제 봉투 구매 기피"…청정 계곡은 쓰레기 더미에 음식물 악취
(강릉=연합뉴스) 이해용 기자 = "여기에 버려도 되나요."
"음식물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세요."
8일 강원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는 중년의 피서객과 고령의 주민 사이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닭볶음탕을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일반 봉투에 넣어 두고 가려 하자 때마침 쓰레기를 수거하던 주민이 목격하고 제지했다.
이 피서객은 "음식물 쓰레기양이 얼마 안 된다"며 볼멘소리로 중형 승용차를 타고 계곡을 빠져나갔다.
주민들은 "음식물을 어떻게 분류해 버려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피서객이 너무 많다"면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런 피서객들은 대부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분류하겠다고 대답만 하고는 그냥 버리고 갈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해수욕장보다 시원한 산간 계곡으로 피서객이 몰리면서 강원도 청정 산골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
주민들은 오전 6∼12시까지 땀을 흘리면서 계곡의 쓰레기를 치워보지만, 곳곳에 버려지는 쓰레기가 워낙 많은 데다 오후에는 폭염 때문에 노인들로 구성된 주민의 수거활동마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단경골은 1996년 9월 잠수함을 타고 내려왔던 북한 무장간첩들이 도주로로 삼았을 정도로 깊은 심산유곡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마음조차 깨끗하게 씻어줄 것 같은 맑은 계곡 물이 오늘도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청정지역이다.
하지만 피서객들이 몰려오면서 청정 계곡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악취까지 진동하고 있다.
이날 '쓰레기 무단 투기하시는 당신, 양심도 같이 버려집니다'라고 쓰인 현수막 아래를 살펴봤더니 누군가 버린 동강 난 노란 플라스틱 테이블이 뒹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폭우에 젖은 종이 상자와 소주병, 양념 통, 맥주캔, 고기 굽던 불판들이 뒤엉켜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 봤더니 계곡은 피서객이 종이 상자에 담아 온 먹을거리를 사용하고 나서 그대로 버리는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쓰레기는 일반 쓰레기봉투, 재활용 봉투, 음식물 봉투 등 3종류로 나눠 배출하도록 하고 있으나 세 가지 종량제 봉투를 사서 오는 피서객은 거의 없었다.
미처 종량제 봉투를 사 오지 못한 피서객을 위해 이곳에서도 1천원에 봉투를 팔지만 이를 구매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민이 이날 새벽부터 계곡에서 수거해 온 쓰레기의 종류는 상상을 초월했다.
누군가 작정하고 버린 스티로폼 상자 묶음 사이에서는 집안에서 사용하던 냉장고의 문짝 4개가 버려져 있었고, 고장 난 선풍기도 나왔다.
또 이불이나 옷, 텐트, 신발 등 집안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도 청정 계곡에 버려졌다.
주민들은 치워도 끝없이 버려지는 피서객들의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묻자 "무슨 대책이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피서용 물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는 대형마트 직원 등이 종량제 봉투까지 사도록 권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순찰을 강화하고 무단 투기자에 대해서 고발 조치 등 강경하게 대처하면 일반 비닐이나 종이 상자 채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현재보다 일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주민들은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아무 데나 버린 음식물 쓰레기에서 생긴 구더기를 치우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피서객들이 계곡에서 먹고 사용하는 물품뿐만 아니라 피서올 때 집안 물건까지 가져와 심산계곡에 갖다버리는 걸 보면 너무나 양심이 없는 것 같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단경골을 돌아보는 사이 쓰레기 더미 주변에 날아다니던 파리들은 차 안까지 날아들어 '웽웽'거렸고, 옷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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