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운명의 갈림길 '뇌동맥류'…최선의 치료법은
'무증상 뇌동맥류' 조기에 찾아내야…"치료가 더 위험한 경우도"
(서울=연합뉴스) 김용배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 김길원 기자 = #. 남모(47)씨는 두 달 전 회사 화장실에서 쓰러져 의식 없이 숨을 헐떡이는 채 발견됐다. 응급실로 후송돼 뇌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결과, 뇌바닥수조(뇌기저조)에 광범위하게 피가 퍼져 있었다. 곧이어 시행한 뇌혈관 촬영에서는 뇌의 좌우 혈관이 만나는 전교통동맥에서 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가 확인됐다.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뇌출혈)이었다. 우선 미세현미경을 이용해 뇌동맥류에 접근한 다음 작은 클립으로 묶어주는 클립결찰술로 재출혈을 막고 이미 퍼져 있는 뇌출혈은 집중치료를 시행했다. 뇌출혈 합병증으로 정상 뇌혈류에도 생길 수 있는 허혈성 뇌기능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서서히 안정되기를 기다린 결과 남씨는 한 달 만에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퇴원 1개월 후 진료실에서 만난 남씨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회복 중이던 퇴원 당시와 달리 걸음걸이가 다시 불안정해 지고,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치매처럼 인지기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증상도 심해졌다. 진찰 결과 뇌출혈 후 발생하는 뇌수두증(출혈로 인해 뇌척수액의 순환이 나빠져 머리에 물이 차는 증상)이었다. 남씨는 입원 후 다시 수술을 받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전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남씨의 사례는 뇌동맥류가 파열됐을 때의 전형적인 경과를 보여준다. 뇌동맥류는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발생하고, 현장에서 바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치료 기회를 가진다 하더라도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합병증 때문에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하고 장기적인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항상 긍정적이지도 않다.
인종, 국가 간 다소 차이가 있으나 여러 문헌에 인용되는 통계를 보면 매년 인구 10만명당 10∼20명꼴로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한다. 이 중 적게는 25%, 많게는 50%까지 결국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생존자 중에서도 거의 절반은 크고 작은 영구장애를 겪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치료하는 의료진 모두에게 혹독한 질병이라 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청구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한 해 동안 뇌동맥류 파열로 치료받는 환자가 약 5천명에 이른다.
다행히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최근 20년간 뇌동맥류 검사기법의 발전으로 진단과 치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나 CT로 아무런 증상이 없는 뇌동맥류도 미리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대한뇌혈관외과학회가 시행한 국내 조사결과를 보면 매년 뇌지주막하출혈의 유병률은 비슷하지만, 미파열 뇌동맥류의 진단 및 치료 숫자는 급격히 늘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약 2만5천건의 미파열 뇌동맥류가 진단됐고 그중 40%인 약 1만건은 예방적 치료가 시행됐다. 이는 앞서 언급한 뇌동맥류 파열의 한 해 치료 숫자인 5천건의 약 두 배에 달한다.
또 한 가지 큰 변화와 발전 중 하나는 혈관 내 색전술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등장이다.
1990년대에 처음 등장한 코일 색전술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 주머니 안에 매우 가느다란 코일을 채워 넣어서 파열을 방지하는 치료법이다. 2000년대 초반 국제 다기관 공동임상연구(International Subarachnoid Trial)에서 기존의 수술적 클립 결찰술보다 효용성이 우월한 것으로 인정되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뇌동맥류 치료 패러다임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이후 혈관 내 색전술은 치료 재료와 시술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함께 이뤄지면서 크게 확산했다. 국내에서도 뇌동맥류에 대한 클립 결찰술과 코일 색전술 시행 건수가 2012년을 기점으로 역전돼 코일 색전술이 뇌동맥류 치료의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뇌동맥류가 파열돼 이미 출혈이 발생한 경우에는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치료를 한다고 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때로는 치유의 기쁨이 허락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가족과 의료진의 간절함이 허망하게 외면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운명의 갈림길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아직 파열되지 않은 뇌동맥류를 미리 발견했다면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꼭 치료가 필요할 것인지, 필요하다면 클립 결찰술이 안전한지, 코일 색전술이 더 유리한지 심사숙고해야 하는 숙제는 남는다.
뇌혈관 치료는 민감하고 복잡한 뇌의 특성상 일정 부분 치료 자체가 가지는 위험성을 동반하게 된다. 또 뇌동맥류라 하더라도 반드시 파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뇌동맥류를 치료하지는 않는다. 뇌동맥류의 위치, 모양, 크기에 따라 치료하지 않아도 특별히 위험하지 않은 뇌동맥류도 많고 어떤 뇌동맥류는 치료가 오히려 더 위험해 치료 없이 그저 운명에 기대는 경우도 있다.
치료를 결정한 뒤에도 고민은 계속된다. 혈관 내 색전술이나 수술적 클립 결찰술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장점을 취하고 어떤 단점을 피할지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 가족 간의 고민과 논의가 치열할 수밖에 없다.
뇌동맥류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많지 않다.
흡연, 고혈압, 동맥경화 등 전반적인 혈관건강과 관련된 인자들이 위험요인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최신 검사기법의 발전으로 가혹한 운명의 선택에 내던져지기 전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다. 만약 위험인자를 갖고 있거나 직계 가족 중 2명 이상이 뇌동맥류를 진단받았다면 적극적으로 뇌혈관 촬영을 고려해 볼 만하다.
◇ 김용배 교수는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교(UCSF)에서 교환교수로 연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신경외과 과장 및 심뇌혈관병원 진료부장으로 재임 중이다. 대외적으로는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뇌혈관외과학회 운영위원, 대한신경중환자학회 운영위원, 대한두개저외과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bi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