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임박' 이란서 美 협상 제안에 주전론 속 주화론
제재 부당성 부각…'핵합의 유지' 유럽 실제 행동 여부 관건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이 닷새 앞으로 임박한 시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듭 이란과 직접 협상을 언급하면서 이란 내부에서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정치권과 군부에서는 일방적으로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미국이 대화를 제안한 데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이름을 붙이자면 '주전론'이다.
이란 권력의 정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달 21일 "미국과 협상해서 이란의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은 명백한 실수"라고 규정했다. 같은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 제안 이후에 그는 이와 관련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란 정예군이자 정책 결정에 영향력이 큰 혁명수비대의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총사령관은 지난달 31일 "정부와 국민은 단결해 최후 승리까지 가혹한 미국의 제재 위협에 맞서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면서 "이란이 대화를 요청하리라는 미국의 꿈은 절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군부가 국방·안보뿐 아니라 행정부, 경제 분야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터라 외교 문제에서도 군부의 입장이 주요 변수다.
이란 외무부와 의회에서도 미국이 이란과 협상하려면 핵합의 탈퇴를 번복하고 이란을 존중하는 자세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상 미국과 대화를 거부한 셈이다.
이란의 주요 일간지와 국영방송도 주전론 쪽에 힘을 실었다. 핵협상을 지지했던 개혁 성향의 매체마저도 이에 동참하는 추세다.
개혁 성향의 일간지 에테마드는 1일 자에 "이란에 대한 협박과 제재, 독설을 내뱉은 뒤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을 이란이 받아들이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설사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난다고 해도 미국이 이미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어긴 전력이 있는 탓에 성공을 장담하긴 힘들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강경 보수 신문 케이한은 1일 자에 "미국의 앞잡이였던 부패한 경제 테러분자들에 대한 정의의 처벌이 시작됐다"면서 "이런 부패 청산의 발톱이 부패의 숨통을 조이자 트럼프가 비명(정상회담 제의)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는 이란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길 바랐겠지만 그들의 기대는 무산됐다"면서 "반국가적인 일부 개혁파만이 트럼프의 제안을 반길 뿐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협상도 완전히 배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른바 '주화론'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미국이 믿을 수 없는 협상 상대이긴 하지만 직면한 미국의 제재를 일단 막고 이란의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협상 테이블에 앉는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란 정부가 거듭 부인하는데도 서방 언론은 다소 즉흥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큰 비중을 두고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미-이란 간 '세기의 이벤트' 성사 가능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미국 언론은 민생고를 이유로 협상을 지지한다는 이란 시민의 인터뷰와 함께 이란 국민이 대부분 찬성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국민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완강한 반미 정책을 꺾지 않는 정부에 불만이 커지면서 이란 바닥 민심이 동요한다는 '기대 섞인' 기사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 정치권에서도 소수의견 수준이지만 이런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수 정치인인 이란 의회 의원 하슈마톨라 팔라하트 피셰사이드는 "미국과 협상을 금기로 여길 필요는 없다"면서 "두 나라가 직접 만나지 않는다면 제3자가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알리 아크바르 나테그누리 전 의회의장도 "일단 미국과 협상을 배제하지는 말자"면서 "국익과 국가의 안보의 관점에서 신중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협상을 조심스럽게 지지했다.
미국의 제재를 앞둔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합의 준수를 11차례나 보고서로 확인했음에도 미국이 불법적이고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고 부당한 제재를 복원, 무고한 피해자가 됐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이 제재로 이란산 원유 수출을 고사하려 한다면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초강경책도 내비쳤다.
현지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란이 북한처럼 예상을 뒤엎고 미국과 만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국제정치 관련 교수는 "이달 6일과 11월4일 두 단계로 복원되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란의 국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유럽 서명국(영·프·독)의 실제 행동을 보고 이란은 다음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유럽이 말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제재에 정면으로 맞서 이란과 교역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란은 미국과 협상에 응할 이유가 없다"면서 "정부에 불만도 있지만 이란 저변에 40년간 깔린 '저항 정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청장은 지난달 30일 유럽 측의 핵합의 유지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유럽이 그대로 지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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