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보름 '당 안정화' 공들인 김병준, '혁신방향 설정' 박차(종합)
민생탐방 차별화…새벽 시간·대중교통 이용·언론 비공개
"인적 청산 우선하는 비대위 돼서는 안 돼"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김연정 기자 = 1일로 취임 보름을 맞은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혁신방향 설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실상 난파 상태인 한국당의 키를 잡은 김 위원장은 당내 계파 갈등을 잠재우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 그간 내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은 자제하는 '정중동' 행보로 일관했다.
대신 취임 일성부터 문재인정부를 '국가주의', '대중영합주의'로 규정하고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을 연일 비판하며 '국가주의 대 자율주의'의 새 프레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이념·노선 투쟁을 통한 '가치 재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것이다.
또 계파 갈등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인적 청산은 뒤로 미뤘다. 그보다 의원들과 선수별, 상임위별로 만나는 '식사 정치'를 통해 소통에 공을 들였다. 당내 기반을 먼저 다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막말 논란에 휩싸이곤 했던 전임 홍준표 체제와 사뭇 다르고, 과거 존재감 상실, 갈등 조장으로 각각 실패한 김희옥·인명진 비대위 때와도 결을 달리하고 있다는 당내 평가가 나온다.
당 핵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병준 비대위'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의 안정화 작업'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는 평가"라며 "이제부터는 어젠다를 세팅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개혁 방안을 만드는 작업을 본격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비대위는 이날 국민과 소통하고 한국당에 대한 쓴소리를 듣기 위해 첫 현장 행보를 시작했다.
언론에 사전 공지 없이 비공개로 일정을 진행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은 3개 조로 나눠 서울 각지로 흩어져 이날 새벽 4시부터 도보와 버스, 지하철, 택시 등으로 이동을 하며 전통시장 상인회, 공시생, 시내버스 기사, 워킹맘, 청소근로자 등을 만나고 생화 도매시장 등을 찾아 민심을 청취했다.
이후 한자리에 모여 조별로 경험한 민심 청취 내용을 공유한 뒤 언론 브리핑을 했다.
김 위원장은 "아침에 저희가 나간 목적은 한국당을 혁신하고 바르게 세우는 데 참고가 될 따가운 말씀을 들어보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당이 제발 싸움 좀 하지 말라, 말을 너무 험하게 하지 말라, 야당으로서 견제력을 빨리 회복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연스럽게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들었는데, 최저임금 이야기가 많았다"며 "서민을 위한 것인데 서민을 오히려 어렵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민심 청취를 위한 현장 행보를 이달 말까지 이어가는 한편 새 가치와 이념 정립 작업도 착수한다.
일단 비대위 산하에 ▲ 당 가치 재정립 소위 ▲ 공천시스템 등 정치혁신 소위 ▲ 민생입법 소위 ▲ 정당개혁 소위 등 4개의 소위를 구성, 가능한 한 모든 의원이 참여하도록 하고, 오는 20일께 있을 당 연찬회에서 이들 어젠다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을 진행할 방침이다.
특히 '가치 재정립'과 관련해 보수 원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대적 흐름에 맞게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인권·노동·평화 등 보수가 놓쳐온 가치를 담아내는 작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4개 소위는 오는 9월부터 두세 달 정도 가동되며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방침이다.
다만 당 가치 재정립 소위 위원장에 박근혜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지낸 행정학자 출신 유민봉 의원을 내정했으나, 비박계 반발과 유 의원의 고사로 결국 철회하는 등 인선에 일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아가 노선 정립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정책으로 구현해낸다는 계획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기간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 패키지 세트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연과 당 정책위원회가 참여하는 '정책전략회의' 가동을 검토 중이다.
인척 청산 작업은 일단 후순위로 미뤄놓은 상태다.
하지만 비대위 안팎에서는 내년 초 비대위 종료 전 김 위원장이 언급한 바 있는 '당협위원장 교체 카드' 등을 활용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세운 뒤 이를 기준으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며 "인적 청산을 먼저 하는 비대위가 돼서는 이 당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보름 간 행보를 놓고 당 일각에서는 '대권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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