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 '인랑' 특수의상 제작자 할리우드 입성기
신간 '바늘 하나로 할리우드를 접수하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인랑'에서 강동원이 착용한 강화복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제작됐다.
영화 '아이언맨' 슈트를 만든 얼라이언스 스튜디오가 디자인과 3D 스컬프팅(조각)을 진행했고, 한국인 특수의상 제작자 바네사 리(49·한국명 이미경)가 제작을 맡았다.
미국에 있던 바네사 리는 강동원 체형을 3D로 스캔해 만든 보디폼에 의존해 피팅 작업을 거쳐 강화복을 완성, 한국으로 보냈다.
바네사 리는 "슈퍼 슈트를 비율 좋은 배우가 입을 때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비주얼이 나온다"면서 "강동원은 동양인으로서 보기 힘든 비율이었다. 한국에서 날아온 피팅룩 사진으로 접한 강동원의 자태는 그야말로 '옷빨(옷발)의 정석'이었다"고 떠올렸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수석 패브리케이터로 활동 중인 바네사 리가 책 '바늘 하나로 할리우드를 접수하다'(여백 펴냄)를 출간했다. 패브리케이터(Fabricator)는 특수효과와 미술, 의상, 분장 등을 총괄하는 전문직을 말한다.
바네사 리는 15년간 '언더월드 2' '엑스맨 3' '나니아 연대기' 지.아이.조' '트랜스포머3' '어벤져스' '헝거게임' 베트맨 대 슈퍼맨' '토르' 등 1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참여했다. '인랑'은 그의 손길이 닿은 첫 한국영화다.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난 바네사 리는 스물여섯이던 1995년 겨울,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그는 한국에서 메이크업과 미용기술을 익혔지만,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장애인, 고졸, 가난, 편모슬하, 작은 키에 예쁘지 않은 외모, 한국사회에서 소위 나는 '을 중의 을'이었다"고 회고했다.
미국 생활 역시 험난하기는 마찬가지. 장애인 차별을 피해 간 그곳에서 그는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또 장벽에 부딪혀야 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LA) 패션 디스트릭트에서 8년간 패턴사로 일하다 우연히 본 신문광고를 통해 30대 중반에 특수의상 제작자로 할리우드에 발을 들여놓았다.
텃세 심하기로 유명한 할리우드지만, 그는 타고난 미적 감각과 바느질 솜씨, 열정으로 여성, 동양인,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슈퍼히어로, 몬스터, 전투복 등 특수의상을 만드는 수석 패브리케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2016년에는 슈퍼 슈트 팩토리라는 특수의상 전문회사도 세웠다. 올 초 개봉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게리 올드먼이 착용한 체형보정용 슈트(일명 팻슈트)가 이 회사 첫 작품이다. 게리 올드먼은 팻슈트를 입은 뒤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품을 입은 기분이야"라고 극찬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책에는 파란만장한 할리우드 입성기를 비롯해 그가 '토르' 크리스 헴스워스의 팔에 매달린 이야기, 브래드 피트의 허벅지 때문에 애먹은 일 등 할리우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가 생생하게 담겼다.
"이 일은 정말 미치도록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스포트라이트도 없다. 치열하게 일하고 고작 엔딩 크레디트에 수백 명의 스태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뿐이다. 그래도 시작했으면 최고의 작품이 나오도록 혼신을 다하게 된다. 내 돈을 들여서라도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 그게 있어야 한다."
301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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