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11년 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 이번엔 끝내야
(서울=연합뉴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며 촉발된 '삼성전자 백혈병' 분쟁이 극적인 해결 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와 피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등 3자는 24일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을 열었다. 3자가 서명한 합의문은 조정위가 향후 마련할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무조건 수용키로 약속한 것이 골자다. 조정위 계획대로 중재안 마련과 수용, 삼성전자의 피해 보상이 오는 10월까지 마무리되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발생 11년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삼성전자 직업병 분쟁은 기흥공장 반도체 라인에 근무하던 황유미 씨가 2007년 3월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유사한 피해를 주장하는 노동자 수는 늘어나 2017년 말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LCD 사업부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뇌종양·재생불량성 빈혈 등 암이나 희소난치성 질환에 걸렸다며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는 73명에 달한다. 회사와 피해자 간 갈등은 2014년 말 전직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은 조정위가 출범하면서 해결 실마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7월 마련된 '조정 권고안' 놓고 양측의 입장이 갈리면서 합의가 무산됐다. 피해자들과 반올림은 그 뒤 삼성전자가 제시한 자체 보상안마저 거부한 뒤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가 1천일 넘게 투쟁을 이어왔다.
오랜 대립은 조정위가 지난 18일 삼성전자와 반올림 측에 '2차 조정을 위한 공개 제안서'를 보내면서 급진전했다. 앞서 1차 조정이 조정위가 의견을 수렴해 조정안을 제시하면 양측이 이를 수락 또는 거부하는 '조정' 방식이었던 반면, 2차 조정은 양측 의견을 바탕으로 결론에 해당하는 '중재'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특히 조정위가 2차 조정에서 중재안을 놓고 어느 한쪽이 제안을 거부할 경우 더는 활동하지 않겠다고 '최후통첩'한 것이 양측 모두의 중재 수용을 끌어내는 데 주효한 것 같다. 조정위는 8~9월 중재안 내용을 마련하고, 9월 말~10월 초 ▲새로운 질병 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안 ▲ 삼성전자 측의 사과 ▲ 반올림 농성 해제 ▲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이 담긴 최종 중재안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긴 분쟁이 당사자 간 타협으로 해결 수순에 들어간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삼성전자가 조정위 중재를 전격 수용한 데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복역하다 올 2월 초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삼성의 추락한 신뢰와 대외 이미지의 회복에 고심해 온 이 부회장으로서는 해묵은 난제를 더 방치하는 데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3년에 가까운 투쟁 끝에 중재를 받아들인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용단에는 찬사를 보낸다. 조정위는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 갈등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기 바란다. 이번 일이 계기로 대기업과 노동자가 직업병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산업현장에서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파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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