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 국면' 북미 비핵화 협상에 韓 '탄력 제공' 해법 뭘까
조기종전선언에 北과 대화협력에 제한적 제재면제 추진할듯
강경화·정의용 방미협의 후 남북 당국 채널 가동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북미 비핵화 협상의 '소강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주 강경화 외교장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이 눈길을 끈다.
강 장관은 19∼23일 각각 미국 워싱턴DC와 뉴욕을 방문했고, 정 실장은 20∼21일 워싱턴을 찾았다. 각각 카운터파트인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한미공조의 틀을 재확인한 모양새다.
이로 볼 때 폼페이오 장관의 6∼7일 방북 협의 이후 미국 조야에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부정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의 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데 대해 그에 저항하듯 북한이 '무대응'하는 속에서 우리 정부가 '중재 행보'에 나선 기색이 역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3일 '싱가포르 렉처'를 통해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작금의 비핵화 협상 소강 국면에 우려를 표시한 바 있으며, 강 장관과 정 실장의 미국 방문 행보는 직접적인 행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미 고위급 접촉 이외에 남북 간 교감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그동안 북미 간 갈등·대립 국면에서 남북 당국이 각종 채널을 통해 나름대로 의견 조율을 과정을 거쳐왔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절차로 본다면 우리 정부가 한미 당국 간 고위급 접촉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의중을 확인한 만큼 이를 바탕으로 남북 당국 간 접촉이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정부가 어떤 카드로 북미 중재에 나설 것인 지에 관심이 쏠린다.
외교가에선 6·12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미군 유해 송환 협상이 일정 수준 궤도에 오른 가운데 비핵화와 대북체제안전보장책을 포함한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관건인 만큼 우리 정부도 그와 관련해 포커스를 맞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거론될 카드로는 종전선언 조기 추진 작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때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으로 확인됐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여러차례 거론했던 종전선언의 조기 추진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문 대통령도 12일 공개된 싱가포르 언론과 서면인터뷰에서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게 우리 정부의 목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종전선언은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에 마침표를 찍는 평화협정 체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선언으로서 북한의 비핵화 완료 이전 과도기 단계의 대북 안전보장 조치라 할 수 있으며, 북한이 강력하게 원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긍정적인 입장이었던 만큼 이를 조기에 성사시키는 데 외교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련된 긍정적 언급에도 불구하고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협상 카드로서 긴요하게 활용할 목적으로 조기 종전선언 논의를 꺼리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대미 설득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강 장관과 정 실장의 방미 논의에서도 조기 종전선언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로선 종전선언 로드맵 중 하나로 8월 말 또는 9월 초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9월 유엔총회 남북미 종전선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종전선언을 소재로 미국을 비판했지만 거꾸로 이 부분이 진전되면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는 계기도 되니, 정부가 적극적인 조정 역할에 나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조 위원은 "종전선언이 정치적 구속력을 가지는 만큼 외교장관급보다는 정상간 발표가 가장 바람직하고, 유엔총회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자연스레 다자무대에 데뷔하는 자리도 된다"며 "우리가 유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미국 입장을 적극적으로 듣고 북측 입장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 한국 정부가 적극적 역할을 하려는 것 같다"며 "특히 종전선언 문제가 풀려야 하고, 이를 위해 유엔총회를 새로운 계기로 만들어가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봤다.
또 주목할 대목은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미 비핵화협상 견인 노력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간 합의인 판문점 선언을 축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장애가 적지 않다. 요소요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로 남북관계가 진척을 이루기 힘든 구조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실제 남북 군 당국간 서해지구 통신선을 복원하는데도 그에 필요한 광케이블, 연료, 차량 등을 지원하는데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서 예외를 인정받아야 했고 다음 달 하순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필요한 발전기 등도 허가 사항이다.
다시 말해 각급 남북회담에서 합의한 사안을 원활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제재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강 장관은 방미 기간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상 브리핑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북한과 대화 협력을 위해 요구되는 부분에는 제한적 제재 면제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완화되기까지는 간단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먼저 우리 정부가 이런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남북 관계 개선 작업이 북미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용현 교수는 "이번 방미는 북한산 석탄의 한국 유입 문제 관련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정부의 객관적 입장을 미측에 알리고, 이와 함께 남북협력 사업 관련 남북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기 위해 (제재 완화 등) 미국에 양해를 구하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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