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코드로 해석한 '로미오와 줄리엣'
변주 남성 4인극 'R&J', 이해랑예술극장서 막 올라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오 로미오, 당신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줄리엣이 발코니에 서서 읊조린다. 아마도 전 세계 연극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사일 테지만 익숙함이 아닌 낯섦으로 다가온다.
무대는 베네치아의 캐풀렛 저택이 아닌 어두컴컴한 교실 안. 책상을 여러 개 쌓아 발코니를 만들었다.
발코니에는 열세 살 가냘픈 소녀 대신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서 있다. 줄리엣을 위해 가문을 저버리기로 한 로미오 역시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두 남학생은 키스한다.
지난 10일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R&J'는 셰익스피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성 4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1997년 뉴욕 초연 이후 시카고, 워싱턴 D.C. 등지에서 400회 이상 공연됐으며 현재까지 미국 전역에서 공연 중이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공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호주, 영국, 일본, 네덜란드,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지에서 공연됐으며 국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R&J'는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한다. 작중 현실 세계의 배경은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남학교다. 라틴어, 수학, 역사, 성경 학습, 고해 성사가 일과인 이곳 남학생 4명은 늦은 밤 기숙사를 빠져나온다.
이들은 비밀 장소에서 붉은 천에 둘러싸인 금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발견한다. 소년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례로 낭독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에 매료된다.
엄격한 규율에 얽매인 남학생들은 억눌린 열정과 욕망, 에너지를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며 마음껏 발산한다.
배우들은 작품 초반 단정한 교복을 입고 출연하지만, 연극이 진행될수록 무대 위를 뛰어다니느라 옷매무새는 헝클어지고, 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는다.
교실로 꾸민 무대는 이들이 내뿜는 에너지를 관객에게 충실히 전달하는 매개체다. 관객이 무대 한쪽만 바라보는 일반적인 무대와 달리 'R&J' 무대는 객석이 중앙 교실을 감싸는 양면 무대로 만들어졌다.
특히, 교실 일부이기도 한 무대석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과 물리적으로 연결돼 배우들의 숨소리와 무대 진동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송한샘 프로듀서는 "무대석은 이 작품 중요 포인트 중 하나로 과거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형극장에서 공연됐을 때도 이와 비슷한 진퇴로가 있었다"며 "무대를 둘러싸고 배우의 신체 표현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학교 학생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한다는 설정을 깔아뒀지만, 동성 간 키스와 신체 접촉 등 동성애 코드도 분명 녹아있다. 사실 뉴욕에서 공연 중인 오리지널 'R&J'는 동성애 코드가 더 확연하고 표현 강도도 높다.
동성애 코드에 관해 로미오를 연기하는 '학생 1' 역을 맡은 배우 손승원과 줄리엣을 연기하는 '학생 2' 역 배우 윤소호의 감정 해석이 서로 다른 점도 흥미롭다.
윤소호는 작중 동성애 코드에 대해 "저는 '학생 2'가 '학생 1'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정도의 감정은 가지고 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손승원은 "'학생 1'이 '학생 2'를 실제로 좋아한다는 식으로 연기한 적은 없다. 물론, 그렇게 오해할 수 있는 요소는 많지만 '학생 2'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9월 30일까지 공연하며 티켓 가격은 R석 5만5천 원, S석 4만5천 원이다. 17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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