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하면 무조건 감형?…학계 "피해자 의사 확인절차 마련해야"
양형연구회 창립 심포지엄서 김혜정 교수 발표…"합의와 처벌불원 구별 필요"
초대 양형연구회 회장에 정성진 대법 양형위원장 선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폭행이나 사기 등 형사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를 했더라도 진정으로 가해자를 용서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형사법적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순하게 피해자가 겪은 피해를 보상해 주겠다는 합의만 있고,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양형에 참작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혜정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형사재판 양형을 통한 회복적 사법이념 구현과 양형인자로서 합의'를 주제로 대법원에서 열린 양형연구회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발제자로 참석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양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처벌불원'의 의사는 단순한 합의서가 아니라 진정한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별도로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이나 재판에 출석한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이런 의사를 확인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이런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현실에서 합의는 보통 금전적 배상을 통해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처벌불원은 피고인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동일시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시행되는 피해자 변호인 제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만 인정되는 피해자 변호인 제도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제도를 활용하면)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피고인에게 직접 전달되지도 않아도 실질적인 피해자·가해자 간 화해가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의 지적은 대법원 판례와도 맥이 닿는다. 대법원은 1983년과 2004년 판결에서 "합의서가 작성된 것만으로는 고소가 적법하게 취소된 것으로 볼 수 없고, 형사 고소를 모두 취하한다는 조정이 성립된 것만으로는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 교수의 의견에 현직 판사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승원 서울고법 판사는 "재판 실무에서는 '합의'와 '처벌불원' 용어가 혼용돼 판결문에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으로 쓰는 사례가 있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으로 설시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피해자 변호인 제도 확대와 관련해서는 "중립적인 법원이 피해자 변호인에 전적으로 의지해 처벌불원 의사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므로, 법원조사관에 의한 객관적 평가와 중재가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는 보충의견을 냈다.
심포지엄 직후 열린 양형연구회 창립총회에서는 정성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초대 연구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양형연구회는 양형정책과 관련된 학계와 실무계 대거 참여해 양형위원회의 자문기구로서 기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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