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모래시계 검사장' 끝내 해임…"부패에 지지말라" 당부
'우군' 요하니스 대통령 "헌재 결정 존중해 쾨베시 보직 해임"
'성역 없는' 공직비리수사로 정치권과 갈등…EU·미, 우려 표명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루마니아에서 공직자 비리수사를 지휘하며 '정의 여사'로 불린 반부패청장이 정치권과 갈등 끝에 결국 해임됐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이 9일(부쿠레슈티 현지시간) 라우라 코드루차 쾨베시(45) 반부패청(DNA) 검사장을 보직 해임했다.
루마니아 대통령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법치국가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면서 요하니스 대통령이 쾨베시 반부패청장 해임 행정명령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올해 2월 비오리카 던칠러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PSD) 정부는 쾨베시 반부패청장을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쾨베시 반부패청장이 수사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하고 정치인을 임의로 기소해 국가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를 댔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그러나 쾨베시 반부패청장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해임 결정을 재가하지 않고 버텼다.
이에 PSD 정부는 요하니스 대통령의 재가 거부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루마니아 헌재는 5월말 요하니스 대통령에게 쾨베시 반부패청장을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요하니스 대통령은 한 달 넘게 시간을 끌다 결국 이날 해임 행정명령에 결재했다.
루마니아 반부패정책 지지자들은 PSD 정부가 쾨베시를 흔들 때마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버팀목이 됐으나 PSD 정부는 법적 권한으로 쾨베시 해임안을 강행했다.
쾨베시가 이끈 반부패청은 루마니아에 뿌리 깊은 부패를 척결하고자 2002년 설립한 사법기구다. 한국이 검토하는 '공직자비리수사처'와 같은 개념이다.
여성 최초, 최연소 루마니아 검찰총장 출신의 쾨베시는 2013년부터 반부패청을 이끌며 굵직한 부패수사를 기획하고 2015년 당시 현직 총리를 비롯해 정치 거물을 잇달아 기소하며 국민의 신뢰를 받았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정의 여사'(Mrs. Justic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성역'을 가리지 않는 쾨베시 검사장의 수사는 PSD 실세를 비롯해 정치권과 줄곧 갈등을 빚었다.
반부패청의 수사·기소로 법의 심판대에 올려진 유력 정치인들은 공무담임권이나 피선거권이 제한되며 줄줄이 정치적 위기에 몰린 탓이다.
총리를 넘어 '최대 실세'로 통하는 리비우 드라그네아 PSD 대표는 공직비리 관련 법령 완화와 쾨베시 해임을 밀어붙였다.
쾨베시 반부패청장은 보직 해임 후 평검사 신분으로 공직에 남는다.
이임식에서 "루마니아 국민에 드릴 말씀이 있다"고 운을 뗀 쾨베시는 "부패를 물리칠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루마니아 반부패청 활동에 힘을 실어준 유럽연합(EU)은 쾨베시 해임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루마니아정부가 반부패청의 활동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EU의 루마니아 사법체계 모니터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마니아 주재 캐나다대사 케빈 해밀턴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쾨베시 반부패청장 해임을 강행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썼다.
앞서 지난달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 웨스 미첼은 부쿠레슈티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루마니아 반부패청에 지지를 표명하고, 정부의 반부패정책 후퇴에 완곡하게 우려했다.
미첼 차관보는 "루마니아는 (반부패 정책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면서 "우리는 루마니아가 지금 여기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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