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 임선혜 "232년전으로의 시간여행"
6~7일 고음악 거장 야콥스와 롯데콘서트홀 공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고(古)음악계 디바' 소프라노 임선혜(42)의 19년 전 유럽 데뷔 무대는 지금까지도 '사건'으로 회자한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 음대에서 유학하던 그는 1999년 고음악 거장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무대에 대타로 서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한국에서 다 해 본 곡"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무대에 서고 싶은 스물세살짜리 겁 없는 소프라노의 새빨간 거짓말. 그는 벨기에 브뤼셀행 새벽 기차에서 7시간 동안 악보를 외워 무대에 섰다. 그다음은 모두 아는 이야기다.
헤레베헤는 그에게 "황금 목소리"라고 극찬했고, 열흘 뒤에 잡힌 다른 공연에도 기존 섭외를 취소하고 그를 출연시켰다. 그렇게 얼떨결에 고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르네 야콥스, 윌리엄 크리스티, 파비오 비온디 등 고음악계 거장들의 신뢰 속에 유럽 바로크 무대의 프리마돈나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6~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되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그의 장기 중 하나로 꼽히는 '수잔나' 역을 연기한다. 야콥스가 지휘를 맡아 콘서트 버전의 오페라로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은 공연을 앞둔 그와의 일문일답.
-- 이번에 공연되는 '피가로의 공연'은 워낙 자주 공연되지만, 이번엔 모차르트 시대의 악기와 연주법으로 연주된다. 고음악 버전으로 듣는 '피가로의 결혼'은 어떤 다른 매력을 지닐까.
▲ 고음악에서는 모차르트의 피치(소리 높낮이)를 430헤르츠(Hz)로 하는데 현대의 음보다 1/4가량 낮은 음조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무언가 안정되고 듣기 편한 음색이다. 현악기들은 조금 거칠고 덜 세련된 듯 하지만 자연에 가까운 음색을 지니고 관악기들의 외관은 현대 오케스트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다. 이러한 고악기들은 모차르트 시대의 '피가로의 결혼'이 어떻게 연주되었을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작품이 초연된 232년 전으로 돌아가는.
--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의 시종인 피가로가 하녀인 수잔나와 결혼하려 하지만 백작이 수잔나를 유혹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임선혜의 수잔나는 과거 다른 무대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는데, 이 역할을 연기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 수잔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역이다. 공연을 한 번 하면 그 동선만으로도 3㎞ 이상을 걷거나 뛰게 된다.(웃음) 쉴 틈 없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기민함과 사랑스러움을 드러내는 아주 매력적인 역할이다. 또한 수잔나는 이 오페라에서 화려한 아리아들로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극이 박진감 넘치고 속도감 있게 이어지도록 돕고 이끄는 역이라고 생각한다.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나면 화려한 아리아 없이도 저절로 반짝반짝 빛난다. 빗나간 공명심이 이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려 한다.
-- 고음악 지휘 거장들과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 함께 서는 야콥스만의 특별한 점을 꼽아준다면.
▲ 야콥스는 작품과 관련된 글은 모두 읽어야만 하는 다독가다. 그의 악보에는 작품을 해석하는데 바탕이 되고 논쟁의 근거가 될만한 문장들이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있다. '피가로의 결혼' 바탕이 된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세 원작 문장들이 가사 밑에 적혀있기도 하다. 이러한 근거들로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고 전체 작품을 하나의 줄기와 스타일로 만드는 음악감독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리허설은 언제나 100% 이상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야콥스와의 작업 시 뭔가 다른 일이나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 고음악계 데뷔를 이끈 헤레베헤 뿐 아니라 야콥스, 크리스티 등 고음악 거장들에게 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스스로 꼽아본다면.
▲ 글쎄…. 제가 오히려 그분들께 여쭤보고 싶다.(웃음) 문화권이 다른 동양인에게서 기대하지 않은 '음악적 유연성' 때문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고음악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새로운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호기심 덕에 새로운 음악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 나름의 해석을 선보인 용기가 임선혜만의 개성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 고음악 전문으로 입지를 굳히며 더 다양한 장르 무대에 서고 싶다는 아쉬움이나 욕심은 없는지.
▲ 사실 예술가곡, 낭만 레퍼토리 등으로 고음악 이외의 활동들을 꾸준히 한다. 그러나 워낙 고음악 가수로 알려지게 되니 다른 부분에 비해 덜 주목받는 건 사실이다. 내년에는 제 첫 가곡 앨범이자 세계 첫 전곡 녹음인 '어빈 슐호프(독일계 체코 작곡가) 전곡집'이 나온다. 소프라노를 위해 쓴 곡을 제가 맡아서 불렀는데 40여 곡에 달한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예술가곡 부분에 좀 더 열정을 쏟으려 한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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