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선생 부인 김희숙 여사 영면…가족장으로 치러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2일 별세한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의 장례식이 고인의 뜻에 따라 4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고인은 장준하 선생의 유해가 안장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준하공원 묘지에 합장 됐다.
유족인 장남 호권 씨는 "주변에서 시민장 얘기가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평소 '조용히 장례를 치르겠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지, 지인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이 가족묘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이날 오후 10시 30분.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운구 차량이 도착하기 전부터 생전 고인을 따르던 지인 등이 묘원 주변에 자리를 잡고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192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정주 신안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할 때 사제지간으로 만나 장준하 선생과 1943년 결혼했다.
결혼 직후 장준하 선생이 군에 입대하면서 연락이 끊겼지만, 1946년 1월 월남해 장준하 선생을 다시 만났다.
고인은 장준하 선생이 종합월간지 '사상계'를 발행할 당시 편집과 교정을 도우며 3남 2녀를 키웠다.
1967년 6월 제7대 총선 때는 옥중 출마한 장준하 선생을 대신해 유세연설을 해 압도적인 표차로 장준하 선생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기도 했다.
1975년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한 후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삯바느질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장준하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평생을 어렵게 산 고인은 2001년 서울시와 국가보훈처의 배려로 국가유공자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해 독립유공자 연금을 받아 생활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2016년 1월 구순잔치에서 "올바른 역사정립과 민주확립, 평화통일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싶다"며 자필 편지를 낭독한 바 있다.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광복군에 합류해 장교로 활동했다.
해방 뒤에는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펼치다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에서 숨진 채 발견돼 권력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불거졌다.
n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