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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 역사와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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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등재된 산사 7곳, 역사와 특징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은 모두 천년 넘게 불교문화를 지킨 사찰이지만, 역사와 특징은 저마다 다르다.
각 산사의 창건 시기와 자연환경, 건물 배치, 눈여겨볼 만한 문화재, 설화를 간략히 정리했다.
◇ 양산 통도사
삼국유사에 따르면 양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는 신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와 금실을 넣고 짠 베로 만든 가사, 대장경을 봉안해 창건했다.
통도사 역사를 정리한 책인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도 비슷한 시기인 646년 자장율사가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고 기록됐다.
통도사는 무엇보다 부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유명하다.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고, 건물 뒤쪽에 금강계단을 설치해 부처 법신(法身)을 봉안했다.
사찰 명칭은 '이곳 산의 모양이 부처가 불법을 설파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 혹은 '승려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신라시대에는 계율을 지키는 근본도량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수위사찰로 지정됐고, 경남 사찰 대본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본사다.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국보 제290호이고, 보물 18점과 경남유형문화재 50점을 보유한다.



◇ 영주 부석사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이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극찬한 고려시대 건축물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676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처음 지은 절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관련 기록이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 이후 40일간 법회를 연 뒤 대립을 지양하고 마음 통일을 지향하는 화엄사상의 근본 도량이 됐다.
부석사(浮石寺)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인 1376년 중수했다는 묵서가 확인된 무량수전은 13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 중심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다. 누대인 안양루에서 올려다보는 무량수전 풍경은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무량수전은 물론 무량수전 앞 석등과 전각 안에 있는 소조여래좌상, 조사당과 조사당 벽화가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절이 있는 봉황산은 지세가 봉황을 닮았다는 곳으로,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나 실제로는 태백산과 이어진다.



◇ 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국보 제15호 극락전(極樂殿)이 있다. 1972년 건물을 보수할 때 나온 상량문에 따르면 1363년 처음으로 건물을 중수했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미와 품격이 느껴진다.
봉정사(鳳停寺)를 창건한 인물은 기록마다 차이가 있어 명확하지 않지만,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대사가 7세기 후반께 지었을 가능성이 크다.
능인대사가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에서 수행하던 중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오늘날 사찰 자리에 머물렀다는 설화가 전한다.
천등산은 정상 높이가 574m이고 경사가 완만한 산이다. 극락전과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이 한데 모여 있으며, 건물 배치는 전반적으로 일자형이다.
임진왜란 시기에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과 불상, 불화가 잘 보존됐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들르기도 했다.



◇ 보은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조선시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의신조사가 553년 창건했다고 기록됐다. 의신조사가 법을 구하러 여행을 떠났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사찰 명칭의 유래다.
통일신라시대 승려 진표율사가 미륵보살 계시를 받은 뒤 김제 금산사에서 속리산으로 가다 소달구지를 만났는데, 소가 울자 달구지 주인이 출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에 길상사(吉祥寺), 고려시대에는 속리사(俗離寺)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법주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한 속리는 '속세에서 떠난다'는 뜻이다.
법상종 중심 사찰이었던 법주사 건물 배치는 화엄사상과 미륵사상 영향을 두루 받았다. 가장 유명한 건물은 국내 최고(最古) 오층목탑인 팔상전(捌相殿).
팔상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사명대사가 1624년 복원했으며, 목탑 아래 월대는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알려졌다. 팔상전 외에도 쌍사자 석등과 석련지가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 13건이 있다.



◇ 공주 마곡사
사찰 중심에 계곡이 흐르고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택리지'와 '정감록'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땅으로 기록됐다.
마곡사(麻谷寺) 창건 시기와 과정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마곡사사적입안'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온 뒤 세웠다고 적었고, '마곡사연기략초'에 따르면 보조선사 체칭이 지었다. 자장율사는 7세기, 체칭은 9세기에 활동했다.
절은 고려시대에 중흥했다. 계곡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는 건물 배치도 고려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마곡사에 들러 '만세에 망하지 않을 땅'이라고 평가했고, 17세기 이후 중창을 거듭했다.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승려화가를 배출했고, 백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해 옥살이하다 탈옥한 뒤 출가했던 절이기도 하다.
국보는 없지만 오층석탑,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석가모니불괘불탱이 보물로 지정됐다.



◇ 순천 선암사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명찰인 선암사(仙巖寺)는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았다.
선암사 창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도화상이 529년 세웠다는 글이 있고, 도선국사가 875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 대찰이 됐으나,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탔고 1759년에도 화재를 겪었다.
이에 따라 건물 배치가 여러 차례 변했는데, 현재 모습은 1824년에 갖춰졌다. 중심건물인 대웅전도 같은 해에 재건됐다.
선암사는 절 입구에 사천왕문을 두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사천왕은 법을 지키는 신인데, 조계산 정상이 '장군봉'이어서 사천왕을 굳이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내에 있는 보물 14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유물은 승선교(昇仙橋)다. 화강암을 다듬은 장대석으로 아치인 홍예를 만들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인 '선암매'는 천연기념물이다.



◇ 해남 대흥사
한반도 남쪽 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大興寺)는 창건 시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늦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운영됐다. 선암사처럼 아도화상 혹은 도선국사가 창건 주인공으로 알려졌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사찰도 대둔사로 불린 적이 있다. 두륜산은 높이가 703m로, 계곡과 편백 숲 덕분에 경치가 수려하다. 계곡은 대흥사도 지나가는데, 이로 인해 마곡사처럼 건물이 남원과 북원에 나뉘어 배치됐다.
대흥사가 다른 사찰과 구별되는 점은 호국정신이 깃든 도량이라는 사실이다. 대흥사에 대해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라고 평가한 서산대사의 충정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表忠祠)도 있다.
차 문화도 대흥사의 특징이다. 대흥사가 배출한 대종사(大宗師) 13명 중 한 명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재정립한 인물이다.
조계종 22교구 본사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국보 제308호다. 보물 8건과 전남유형문화재 5건도 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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