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작가 "퀴어의 사랑 더 많이 쓰고 싶어요"
등단 때부터 커밍아웃…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 호응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어쩌면 사랑은 영원히 정의되지 못한 채 부유하며 말할 수 없음, 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것을 느꼈다, 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설가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책 한 권을 써내며, 음악가는 선문답처럼 음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추며 투박해지는 것에 저항한다." ('Auto' 중)
소설가 김봉곤(33)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는 이렇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 의미를 탐구하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거나 실연을 당한 인물들의 내밀한 감정을 섬세한 문장들로 풀어낸다.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녹아있는 듯한 이야기들은 그 솔직한 드러냄으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이 지나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그애가 보였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어쩌면 유속으로, 또 어쩌면 여름의 속도로 영우가 내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여름, 스피드' 중)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그는 사랑의 글쓰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까 사랑에 미친 사람처럼,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제어불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했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Auto'(오토)로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우회적으로 '커밍아웃'했다. 이 등단작을 비롯해 그의 소설은 '게이'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문학평론가 한설은 그의 작품을 "한국문학사에서 퀴어소설의 계보도를 그린다면 가장 빛나는 위치에 두어야 할 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저는 '나의 농도'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등단작인 'Auto'는 제 농도가 많이 들어가 있는 소설이고, 이후에는 제 이야기가 여기저기 변주해서 들어갔어요. 줄여보기도 하고 픽션을 섞어보기도 하고 여러 실험을 해보는 데요, 결국은 제 이야기를 많이 쓰게 되네요.(웃음)"
작가는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 방식을 이렇게 말했다.
'Auto'에는 주인공이 듣는 소설 창작 수업 중 교수가 '침몰하는 세월호 속 인물의 일인칭시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써오라'는 과제를 내 주인공이 이를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소설 쓰기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어 인상적이다.
"실제로 제가 그런 과제를 받았고,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어쩌면 제가 첫 번째 작품집에서 저 자신에게 집중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타인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저에 대해 자폐적으로 쓰는 게 윤리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편협하단 얘기를 들을망정 내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사건이었죠."
그의 소설에는 사랑 이야기와 함께 영화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그가 실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꾼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며 전공을 바꿔 연극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원래 씨네필(영화광)은 아니었고 어떤 식이든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엔 영화가 핫한 장르여서 영화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만들어보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고요. 영화 제작 현실이 우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웃음) 영화보다는 소설이 훨씬 더 자유롭고 내밀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3인칭 시점인데, 저는 1인칭으로 말하는 게 좋았거든요."
그는 다른 퀴어 소설, 영화처럼 소수자로서 겪는 차별이나 아픔 같은 내용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저는 사실 퀴어라서 행복한 편이거든요. 오히려 그 기쁨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신인 소설가의 첫 소설집임에도 이 책은 출간 사흘 만에 2쇄(3천 부)를 찍을 정도로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저도 의아하고 놀라고 있는 상황이에요. 어떻게 이렇게 초기 반응이 좋을 수 있는지 설문조사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표지가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는 듯하고, 김애란 작가님이 추천사를 써주시고 해서 그런가 싶네요."
그는 작년 말 발표한 '라스트 러브 송'까지 6편을 이 책에 담았는데, 이 작품을 끝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너무 나에 집중한 느낌이 커서 이제는 조금 타인에 대한 창문을 열어두고 싶다고 할까요. 뭐 여전히 똑같이 써지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습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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