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난계국악박물관
'樂聖' 박연의 예술혼 깃든 곳
(영동=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난계 박연(1378~1458)은 신라의 가야금 악사 우륵, 고구려의 거문고 대가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으로 꼽힌다. 난계의 삶과 예술혼을 담은 난계국악박물관이 고향인 충북 영동에 들어서 있다. 이곳에선 우리나라의 다양한 국악기를 종류별로 만날 수 있다.
조선 초기 궁중음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온 향악, 당나라의 당악, 송나라의 아악이 혼재돼 있었다. 특정한 음악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때그때 취사선택해 사용했다. 음악을 정리하라는 세종의 명을 받은 박연은 아악을 정리해 궁중음악의 기본으로 삼았다. 박연은 음 높낮이의 표준이 되는 12율관(律管)을 제작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데 쓰이는 편경도 만들었다. 세종은 아악을 정비한 박연과 향악을 집대성한 맹사성의 의견을 들어 새로운 궁중 제례음악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이다. 박연이 이룬 업적은 현재까지 이어져 국악의 바탕이 되고 있다. 난계가 '국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다.
현재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가면 박연의 영정을 모신 난계사, 생가가 있다. 난계사 주변에는 국악기체험전수관, 영동국악체험촌이 들어서는 등 국악마을이 형성돼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에서는 그의 삶과 업적을 들여다보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국악기를 관찰할 수 있다.
◇ 국악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
난계국악박물관 첫 번째 공간의 주제는 '옥계폭포를 지나'로, 폭포가 있는 산수화를 바라보는 박연의 그림이 방문객을 맞는다. 수려한 그림 속 폭포는 난계가 어린 시절과 노년에 즐겨 찾아 대금을 불었다는 옥계폭포다. 바로 옆 영상실에서는 난계의 삶과 음악적인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상영된다.
두 번째 공간은 '국악을 이해하다'란 주제로 꾸며져 있다.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광복 이후까지 우리나라 음악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설명돼 있다. 통일신라의 삼현(가야금, 거문고, 비파) 중 하나에 속하는 악기인 '향비파', 목관악기인 '지' '적' '약', 박달나무 여섯 조각으로 만든 타악기인 '박', 고구려 시대부터 아악에 사용된 관악기인 '소' 등 특이한 모양의 악기가 함께 전시돼 눈길을 끈다.
그다음으로 국악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박연, 왕산악, 우륵 등 '3대 악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전시물 아래 모니터에서는 3대 악성의 업적과 역사적 의의를 알려주는 2D 애니메이션 영상이 나온다. 뒤쪽에 있는 국악기 미디어 테이블에서는 화면에 나타나는 국악기를 선택하면 해당 악기의 소리를 들으며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얻을 수 있다. 박물관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박연과 국악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난계와 송씨 부인이 함께 있는 조선 후기의 초상화. 홍색 관복을 입은 후덕한 인상의 난계가 부인을 마주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조선 시대 초상화 중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등장하는 초상화라고 한다. 원본은 국립국악원에 있다. 이 그림과 관련한 이야기도 전한다. 어느 화가가 난계 묘소에 왔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난계와 송씨 부인을 만나고 나서 이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옆에는 임금이 박연의 진사과 합격을 증명하는 증표인 커다란 '왕지'(王旨)가 걸려 있다. 왕지에는 '成均生員朴堧偉人(성균생원박연위인) 進士第一人出身者(진사제일인출신자) 永樂九年四月(영락구년사월)'이라 씌어 있다. 이렇게 출사한 박연은 대군이던 세종에게 글을 가르치는 세자 시강원의 문학이 됐다.
초상화와 왕지 아래에는 세종이 창안한 악보인 '정간보', 조선 의궤와 악보를 정리한 악서인 '악학궤범', 가사집인 '가곡원류', 거문고 악보인
'금보' 등 국악 관련 고문헌의 복제본이 전시돼 있다.
◇ 세종실록에 나타난 박연의 업적
다음 공간부터 난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우선 세종실록 속 박연의 활약상과 업적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은 박연이 세종에게 악서 편찬, 12율관과 편경 제작 등을 청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악공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청원하는 내용도 있다.
모니터 아래에는 박연의 업적 중 하나인 12율관이 전시돼 있다. 율관은 각기 다른 길이의 원통형 관을 서로 붙여놓은 형태로 음의 높낮이의 표준이 되는 도구다. 박연은 기장 낱알 1천200알을 관에 채워 기본음인 '황종'(서양음계의 높은 '도')을 내는 '황종율관'을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길이를 빼고 더해 다른 음을 내는 12율관을 제작했다.
편경과 편종도 전시돼 있다. 양경순 문화관광해설사는 "편경과 편종은 서양의 피아노처럼 다른 악기를 조율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라며 "돌이나 종의 두께가 각각 다른데 두꺼울수록 높은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한쪽에서는 조선 시대 악사의 복식을 관찰할 수 있다. 악기 연주자는 빨간색 명주로 만든 홍주의(紅紬衣)를, 소리를 하는 사람은 흰색 명주로 만든 백주중단(白紬中單)을, 박을 쳐서 전체 음악을 지휘하는 집박은 초록색 녹초삼을 착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기네스북 오른 세계 최대 북 '천고'
세 번째 공간의 주제는 '소리를 이해하다'이다. 국악의 12음계를 이해하고 서양 7음계와의 차이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세종이 창안해 음의 길이와 높낮이를 표시한 정간보와 서양 오선보를 통해 국악과 서양음악의 다른 점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역대 군왕의 신위를 모시는 서울 종묘에서 매년 5월 진행되는 종묘제례악 연주도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네 번째 공간은 국악기를 볼 수 있는 '소리를 창조하다'이다. 현악기 코너에는 손가락으로 줄을 뜯거나 활로 줄을 문지르거나 두드려 소리를 내는 거문고, 가야금, 비파, 월금, 아쟁, 앙금 등이 전시돼 있다. 하프와 비슷한 사다리꼴 모양의 '수공후', 봉황 모양의 '와공후', 부부 사이의 정을 나타내는 '금'과 '슬'도 실물로 볼 수 있다.
관악기 코너에는 가로로 잡고 부는 대금·중금·당적·지, 세로로 잡고 부는 세피리·향피리·당피리가 있다. 작은 항아리에 구멍을 뚫어 신비한 음을 내는 '훈', 날숨과 들숨에서 모두 소리가 나는 '생황'도 흥미롭다.
타악기 코너에서는 사물놀이에 사용하는 장구, 징, 꽹과리, 북은 물론 박, 축, 어 등 특이한 모양의 악기를 볼 수 있다. 큰 잔치에 쓰이는 가로 150㎝의 건고를 위시해 갈고, 진고, 중고, 용고, 교방고, 응고, 삭고, 뇌고, 영고 등 북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한쪽에는 얼굴 모양, 성격 등을 입력하면 사상의학에 따른 체질과 함께 각자에게 맞는 국악기를 알려주는 코너가 있다. 피리, 해금, 가야금, 거문고 등 악기를 선택하면 영상을 보며 헤드폰으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2층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민속악기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인근 영동국악체험촌에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대의 북인 '천고'가 있다. 북 지름 5.5m, 무게 7t인 천고는 소 40여 마리의 가죽, 소나무 원목 2만4천 재(15t 트럭 40대 분량)를 투입해 14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 박물관 관람 정보
-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 휴관: 1월 1일, 추석 연휴, 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다음 날
- 관람료: 어른 2천원, 청소년·어린이 1천500원
- 문의(☎): 043-740-3886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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