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D데이… '가보지 않은 길' 담판에 운명 달렸다
15분 인사→45분 단독회담→90분 확대회담→오찬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베일에 가려져있던 6·12 북미정상회담의 구체적 일정표가 11일 윤곽을 드러냈다.
백악관이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을 보면 12일 오전 9시(싱가포르 현지시간) 인사의 시간으로 시작해 9시15분부터 45분간의 단독정상회담으로 시작해 확대정상회담(10∼11시30분)→업무 오찬(11:30분∼)→기자회견(오후 4시∼)을 하는 당일치기 일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7시 미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기자회견 전까지 주어진 시간은 최대 7시간.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5분간 일대일 담판에 따라 이번 정상회담 전체의 향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오전 9시 회담을 시작할 때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고 함께 걸어가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 보도했다. 단독회담에는 양측 통역만 배석하게 된다.
두 사람의 정치적 명운을 건 '2시간의 담판' 결과에 따라 북미 간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싱가포르 본토와 연결된 다리와 모노레일, 케이블카만 끊으면 외부세계와 단절되는 '요새'와 같은 곳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비핵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두 정상이 오롯이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 CNN방송은 "전직 부동산 거물이자 리얼리티쇼 스타 출신과 한때 미치광이로 비쳤지만 능수능란한 외교적 수완가로 부상한 무자비한 독재자의 대결"로 묘사하며 "전무후무한 정치인 스타일의 두 사람이 함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운명 속으로 내던져졌다"고 풀이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회담 하루 전날인 11일 "북한과의 대화가 매우 빨리 진전되고 있다"며 낙관적 전망을 하긴 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는 두 정상에게 공이 넘어간 상황이다.
북미 정상이 일대일 대좌에서 '통 큰 결단'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을 맞바꾸는 역사적 빅딜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즉흥적이고 파격적인 스타일을 선보여온 '승부사' 두 사람이 일대일 담판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캐미스트리(궁합)를 연출하며 가시적 성과를 거두느냐 아니면 사진촬영용 행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분이면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진정성을 판가름할 수 있다며 회담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기꺼이 '정중하게' 회담장 밖으로 걸어나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백악관의 고위 관계자는 WP에 북미 양측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복잡한 세부사항들을 놓고 합의에 어려움을 겪은 점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회담이 그간의 실무회담을 대체하며 최종 결과를 추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미 간 협상은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룰 것인가의 문제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양측간 근본적 격차를 좁히지 못해 좌초돼왔다고 WP는 전했다.
그러나 북미정상회담의 첫 순서가 양측 고위 참모나 핵 전문가들의 배석 없는 단독 대좌로 시작하기로 한 결정 자체가 이번 회담이 비핵화 합의의 기술적, 구체적 내용을 합의하고 서명하기보다는 관계를 개선하고 화려한 구경거리를 세계 무대 위에 올리는 자리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WP는 풀이했다. 회담이 시작되는 시간은 미국 프라임시간대이기도 하다.
통역 시간을 고려하면 45분은 깊은 논의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은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며 후속 회담 가능성을 여러 번 시사, 기존의 빅뱅식 일괄타결 프로세스에서 기대치를 낮췄다는 분석을 낳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이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거세게 비난했던 전임 정권들의 협상들과 차별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번 회담은 큰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성공한다면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 1980년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미·소 정상회담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CNN방송은 내다봤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할 경우 군사적 충돌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거대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많은 것은 김 위원장의 전략적 선택 여하에 달리게 될 것이라고 CNN은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만큼은 체제보장과 경제 보상 등을 위해 핵무기를 진짜 내려놓는 결정을 할 것인지 아니면 과거처럼 눈속임식 가짜 핵 포기 약속을 내걸고 양보를 요구하는 '익숙한 게임'을 할 것인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오후 4시부터 잡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별도 회견인지 아니면 김 위원장과의 합의문 공동발표 형식인지는 구체적으로 공지되지 않았다.
북미 정상이 일정 수준의 합의에 도달한다면 4·27 남북정상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서명한 뒤 공동으로 발표했던 것처럼 공동선언문을 함께 발표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hanks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