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의 세상을 향한 작은 날갯짓…영화 '여중생 A'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A는 미래(김환희 분)가 쓰는 소설 속 새의 이름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새가 이름을 잊어버려 울고 있자, 여우가 다가와 붙여준 이름이다.
A는 여중생 미래의 현실 속 모습이기도 하다. 울지만 않을 뿐, 늘 주눅이 들어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이는 없다. 아빠는 술만 취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피곤함에 찌든 엄마는 딸의 보호막이 돼주질 못한다. 학교 체육 시간에는 손을 맞잡을 친구 한 명 없다.
외톨이인 미래의 낙은 글쓰기와 PC 게임하기. 미래는 틈만 나면 노트를 펴고 연필로 꾹꾹 눌러 소설을 쓴다. 게임 '원더링 월드'에 접속해서는 괴물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던 미래에게 어느 날 같은 반 친구 백합(정다빈)과 태양(유재상)이 다가온다. 미래는 모처럼 생긴 현실 친구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보지만, 이들의 속내를 알고 큰 상처를 받는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여중생 A'(이경섭 감독)는 평범하지만, 남들과 소통하는 데는 서툰 여중생 미래가 조금씩 세상과 부딪히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동명의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절망에 빠진 미래는 죽을 결심을 하고, 게임 속에서 만난 친구 재희(김준면)를 찾아간다. 재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형 탈을 쓰고 거리에서 프리허그를 한다. 미래는 그런 재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둘은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가 된다.
청소년들의 세계는 때로 어른들의 그것보다 더 비정하다. 작은 악의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때로는 선의가 남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이들의 행동은 더 거침없다.
영화는 그런 청소년들의 모습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각 등장인물에 골고루 애정을 쏟으며 각각의 사연과 에피소드들을 펼쳐낸다.
그렇다고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감독은 게임 속 세상을 실사로 구현했다. 미래의 같은 반 친구들이 게임 캐릭터로 등장한다. 친구를 갖고 싶은 미래의 속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실사 장면들은 투박하지만, 극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아무 힘도 되지 못한다. 미래의 담임 선생님(이종혁)은 학생들을 챙기기보다 난을 가꾸는데 더 애정을 쏟는다. 미래를 세상 밖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친구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를 만났을 때 그는 익명의 A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영화 '곡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환희가 여중생의 감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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