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아 감독 "영화계는 모순이 공존…미투 태동 이상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영화 산업은 최악과 최고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정의로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천사일 리는 없죠. 모순이 공존하는 곳에서 미투 운동이 태동한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근 세계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성폭력 고발은 지난해 10월 거장 하비 와인스타인 감독의 성 추문을 알리기 위해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나도 피해자'라는 의미의 '#Me Too'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야기했다.
'미녀와 개자식들'(2017), '튀니지의 샬라'(2014) 등에서 아랍 여성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 온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2일 미투 운동이 영화계에서 발화한 데 대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습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홍대 앞의 한 호텔에서 만난 하니아 감독은 "영화계에는 주목받는 스타가 있고 온갖 다이내믹한 요소가 얽혀있어 크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며 "여성 인권 문제는 영화계에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비슷하게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니아 감독은 "감독들은 가장 정의로운 것을 이야기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툴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라며 "영화 산업 자체가 모순을 안고 있고, 미투를 이야기하는 여배우들도 모순적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여배우들이 영화계의 성폭력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가진 꿈이나 욕망 같은 것도 얽혀있다"며 "영화계는 온갖 모순이 공존하고 있어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것도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니아 감독은 1일부터 6일까지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와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제7회 아랍영화제 참석차 전날 방한했다.
하니아 감독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그녀는 전날 저녁 한국에 도착해 홍대 앞 거리를 걸었다고 한다. 홍대의 밤거리에서 무척 활기차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불과 몇 시간 밖을 돌아다녔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밤에 혼자 밖에 나가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도 저를 환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아랍영화제 측은 '포커스 2018: 일어서다, 말하다, 외치다' 섹션에서 세 편의 아랍 영화를 소개한다. 그중 두 편이 하니아 감독의 작품인 '미녀와 개자식들'과 '튀니지의 샬라'다.
'미녀와 개자식들'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 초청작으로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마리암이 공권력으로부터 2차 피해를 보는 내용을 담아냈다.
'튀니지의 샬라'는 청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면도칼로 긋고 달아나는 '샬라'(challat·해치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추적하는 모큐멘터리(Mockumentary·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 허구의 상황을 실제처럼 연출한 것)다.
튀니지 출신인 하니아 감독은 2010∼2011년 튀니지 민주혁명(일명 재스민 혁명) 이후 두 작품을 연출했다.
두 작품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 '미녀와 개자식들'에 등장하는 마리암은 튀니지 혁명 이후인 2012년 경찰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민주혁명 후에도 이런 일은 일어났어요. 사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여성 인권 문제는 존재하잖아요. 천국이라고 하는 스웨덴에서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고, 프랑스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율은 10% 이하에요. 그래서 곳곳에서 여성들이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지요."
다만, 그녀는 민주혁명으로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지 않았다면 여성 인권을 주장하고 부패한 공권력을 고발하는 영화는 제작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는 것은 약간 허세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바꿔야죠. 다만, 영화가 작은 기여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제기하고 여러 사람에게 함께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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