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로 불러낸 1960년대 기공 통해 '시민 공간'을 찾다
박성태 감독 등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기획자들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건축가 김석철(1943~2016)이 설계했다. 김석철은 예술의전당,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을 만들고 도시 설계에도 적극 참여한 유명 건축가다. 1969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에 있을 때 설계한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고인이 유독 자부했던 작업이었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은 총넓이 870만 평인 여의도 양 끝에 국회의사당과 시청을 세우고 그사이를 '논스톱 교통망'으로 잇는 계획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가장 현대화된 도심권"이 펼쳐진다고 흥분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여의도 풍경은 마스터플랜과 꽤 다르다. 장밋빛 꿈을 이루기엔 당시 기술과 자본이 부족했던 탓이다.
"한국 사회가 이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림을 그려본 것으로 생각해요. 1943년생, 1937년생으로 당시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던 젊은 건축가들이 유토피아를 펼쳐 보인 것이죠."(박정현 큐레이터)
26일(현지시간) 공식 개막한 베니스비엔날레 제16회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비롯한 과거 기공의 작업들을 재사유한다. 전시 기획을 총괄한 박성태 예술감독과 박정현, 정다영 큐레이터 등을 최근 출국 전 서울에서 만났다.
전시가 주목하는 1960년대 기공은 반세기가 넘도록 외면받았던 존재였다. "건축가들에게 1960년대는 애매했던 것 같아요. 개인으로서 꿈꿨던 이상향과 국가가 내세운 목표 사이에서 표류한 시대가 아니었나 해요."(박 감독) '스테이트'와 '아방가르드'가 공존하면서도 묘하게 어긋나던 시대였던 셈이다. 군사독재 정권과 긴밀히 연결될 수밖에 없던 기관을 조명하는 시도가 정치적 시비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기공이 잊힌 배경이 됐을 것이다.
외면받은 세월 동안 흔적은 사라졌다. 현존하는 기공이 소장한 유일한 옛 기록이 '기공 30년사'일 정도다. 한국관 전시를 아카이브 중심에서 동시대 건축가, 미술가, 소설가가 적극 개입하는 전시로 바꾼 결정적인 이유다. 박 감독은 "그래도 어떻게든 찾으면 자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없더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김성우(엔이이디건축사사무소)는 전시장에 세운상가(1967)를 대상으로 한 '급진적 변화의 도시'를 세웠다. 김수근이 설계한 세운상가는 그동안 낡은 건물과 영세 상인에 둘러싸여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급진적 변화의 도시'는 최근 거세지는 도심 개발 압력을 억누르는 일종의 장치로 세운상가를 바라보는 시도다.
바래(전진홍+최윤희) '꿈 세포'는 국가가 주도해 번영의 공간을 펼쳐 보인 구로 산업박람회(1968)와 달리, 이후 가장 열악한 주거공간이 만들어진 구로동을 현재 이주노동자 시점으로 바라본다.
이밖에 엑스포70 한국관(1970)을 바탕으로 한 설계회사(강현석+김건호) '빌딩 스테이츠'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대상으로 한 최춘웅 '미래의 부검'도 설치됐다.
이들 젊은 건축가의 작업을 사진가 김경태, 미디어아티스트 서현석, 소설가 정지돈의 작품이 채우면서 한국관 전시는 하나로 엮인다. 한국관에서는 반세기 전 분명히 실재했으나 기록되지 않은 한 여성 건축인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빛은 어디서나 온다' 낭독 퍼포먼스도 열린다.
'시민'을 염두에 둔 공간 자체가 부재했던 시절 한국 사회에 세워지거나 최소한 설계 단계를 밟았던 이들 유산을 돌아보는 시도는 이번 건축전 전체 주제인 '자유공간'(Freespace)과 자연히 연결된다.
세운상가처럼 국가가 지난 수십 년간 건설하고 점령했던 공간들은 우리 곁에 있지만,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짚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기무사 터, 마포석유비축기지, 용산미군기지처럼 국가와 권력이 가졌던 공간을 시민계급이 점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서울도 '시민 공간'(civic space)를 획득해 간다고 생각해요. 도심에 부재했던 시민공간을 이렇게 되찾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박 큐레이터)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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