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럽지 않은 의사·변호사들의 남모를 고민
에세이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 '비긴 어게인'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고소득 전문직의 대명사인 의사, 변호사는 많은 이들이 꿈꾸는 선망의 직업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실생활에서 불친절한 의사를 만나거나 의료 사고를 경험하고, 송사로 의뢰한 변호사가 자신을 잘 대변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이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기도 한다.
TV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가 극단적인 선악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데만 집중해 직업인·생활인으로서 평범한 의사, 변호사들의 내면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에세이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그는 가고 나는 남아서'(청년의사)는 "의료계의 신춘문예"로 불리는 한미수필문학상 제15회, 제16회, 제17회 수상작 40편을 묶은 수필집이다. 제16회 대상 수상작인 김원석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피부과 교수의 '악수', 제17회 장려상 수상작인 김창우 강동경희대병원 외과 교수의 '거즈 유감', 제15회 대상 수상작인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임상조교수의 '죽음에 관하여' 등이 실려있다.
'악수'는 손바닥 전체에 두꺼운 뿔 같은 사마귀들이 나 있는 환자를 2년 이상 힘겹게 치료한 이야기다. 사마귀는 "냉동치료로 얼려 죽여도, 레이저 치료로 불태워 죽여도 다시 부활해서 자라는 억척스러운 질환"이어서 환자에게 포기하자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계속 받지만, 필자가 어느날 인터넷 검색으로 외국 연구논문에 담긴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하고 시도해 치료에 성공한다. 손 때문에 제일 불편한 게 '악수'라고 말했던 환자와 마지막에 악수하며 헤어지는 장면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거즈 유감'은 병원 수술 중 실수로 환자 복부 안에 거즈가 남게 된 상황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진심어린 사과로 시작해 별 분쟁 없이 지나간 이야기다. 평소 친절하게 환자들을 대해 '이달의 친절 직원'에 숱하게 이름을 올리며 환자들과 신뢰를 다져온 필자는 이 사건의 피해 환자와 그 가족에게 걱정했던 것만큼 큰 비난을 듣지는 않는다. 예상했던 법정 다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심지어 환자의 가족은 "혹시 병원 측에 이 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교수님께 해가 되진 않을까요?"라고 걱정하기까지 한다.
"아무튼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사과는 이 사건의 출발점이지, 종결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할 말이 아니라 시작부터 할 말이고, 해결 과정 내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지만, 나는 그 출발이 올바른 사과에서부터라고 확신했다." (19쪽)
이 얘기는 최근 잦은 의료 사고로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무너진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긴 어게인- 당신은 무죄입니다'(젤리판다)는 젊은 변호사 두 명(이다혜·임이삭)이 함께 쓴 에세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기대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의 인간들 사이에서 소송을 대리하며 겪는 어려움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임이삭 변호사는 "나는 오늘 사기죄 고소장을 쓰고, 내일은 아마도 사기죄 피고인을 변호할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나는 그 두 가지 일 사이에서 큰 역할 갈등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입장은 존중되어야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다혜 변호사가 소개하는 한 의뢰인의 사례도 흥미롭다. 경찰 공무원 출신으로 깔끔한 인상의 할아버지가 찾아와 아내 명의로 된 집을 딸이 빼앗아갔다며 법정 다툼을 벌이는데, 재판 진행 과정에서 이 할아버지가 잦은 외도로 가정 경제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으며 자녀들 양육도 아내가 전담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의심하고, 신중하되, 선과 악의 구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버리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선과 악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과 악을 구분해 내는 일이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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