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합의 새 조건 요구는 이란 정권교체 노린 것"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란과 새로운 핵 합의를 위해 12개 항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사실상 현 이란 지도부 교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문가들을 인용해 23일 분석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노골적으로 이란 정권 교체를 촉구하지는 않았으나 현 이란 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 조건을 내세운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는 현 이란 정권 교체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15년 이란과 핵 합의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셔먼 전 국무차관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접적이지는 아니더라도 정권교체를 조장하려는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란 핵 합의의 파기를 공약한데 이어 대통령 취임 후에는 오히려 이란에 대한 비난의 범위를 내정과 외교로까지 무한정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이란에 대한 대표적 강경파로 이슬람 정권교체를 주장해온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외교안보핵심 참모를 맡은 상황이다.
중앙정보국(CIA) 관리 출신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네드 프라이스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요구 조건은 '실행이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단지 '이성과 실용주의의 겉치레로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반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 이란 실장을 지낸 마이크 싱은 폼페이오 장관의 '불만'이 역대 미 행정부가 표명해 온 우려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요구 조건이 급진적인 것도 아니고 정권교체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그러나 동맹들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고, 협상 타결의 간극이 지나치게 큰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셔먼 전 차관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이 제시한 요구 중 되도록 많은 것이 이뤄지기를 희망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라면서 특히 유럽 동맹들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만큼 (폼페이오의 요구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12개 항을 동시에 모두 달성하려면 "아마도 수십 년이 소요되는 복잡하고 장기간의 협상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와 제재 부활을 결정하면서 국무부 관리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이른바 '플랜 B' 성안에 급거 착수했으며 이번 주 유럽 동맹들과의 회합에서 이에 대한 전략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현재 78세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의 후계구도를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가 사망할 경우 이란 정국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말과 연초 이란 내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주목하면서 역풍이 일수 있는 시위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 대신 주민들의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는 등 이란 정권의 외부 정보 차단 공세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주민들이 혁명 직전이라는 오도된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FT는 이날 사설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요구를 '강요에 의한 외교'로 비판하면서 이란이 수락하기 힘든 요구를 제시함으로써 상황을 미-이란 간 전쟁이나 이란의 정권교체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의 압박과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스라엘로부터 위협에 궁지에 몰린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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