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현대차그룹, 엘리엇에 항복…공정한 지배구조안 내놔야
(서울=연합뉴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공격에 백기를 들었다. 그동안 추진해왔던 지배구조개편안을 주주총회 1주일가량 앞두고 철회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에 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부품 사업으로 나눈 뒤 모듈·AS 부품 부문을 현대글로비스에 합치는 내용의 지배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정몽구·정의선→존속 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지배구조를 간소화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엘리엇에 이어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 서스틴베스트,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잇달아 반대의견을 냈다. 국민연금마저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자 현대차그룹은 철회 선언을 했다.
현대차그룹의 항복은 충격적인 일이다. 현대모비스 지분 1%대를 가진 엘리엇이 계열사 지분 등 30%의 우호지분을 보유한 총수일가의 분할·합병 계획을 비교적 쉽게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을 물리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단기이익을 빼먹는 데만 집중하는 헤지펀드의 모럴해저드와 부도덕성에 흔들리지 말라면서 거센 여론몰이에 나섰다. 자신의 개편안이 재벌의 고질적 문제인 순환출자를 효율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이라는 점을 홍보하고, 총수일가가 1조∼2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납부한다는 점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현대차그룹 방안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 거대 기업집단은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의 본질을 소통부족이라고 했다. 주주와 시장참가자들에게 지배구조개편안의 장점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소통이 아니라 공정성의 문제다. 모비스에서 떼어낸 사업부문을 물류회사 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비율이 공정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끓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개인지분이 30%에 달하는 글로비스에 부당하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주장에 대해 납득할만한 해명을 못 한 것이다. 아직도 삼성그룹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한 회사로 합치면서 합병비율을 불공정하게 산정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현대차그룹이 똑같은 의혹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이하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는 이유다.
이번 사태는 외국의 헤지펀드가 한국의 간판기업인 현대차그룹의 목을 쥐고 흔든 큰 사건이다. 문제는 앞으로 한국의 대형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쉬운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은 허점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줬고, 헤지펀드들은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 제2, 제3의 엘리엇이 나타날 수 있고, 이들에게 당하는 제2, 제3의 현대차그룹이 나올 수 있다.
일각에서는 기업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업 운영이든, 지배구조 개편이든 공정성을 철저히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이 가치가 최대의 경영권 방어 무기다. 그러지 않으면 누구의 지지도 받기 어렵고.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정부도 재벌그룹 지배구조개편 추진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짧은 기간에 성과를 내는데 몰입한 나머지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데만 급급해서는 재벌개혁을 제대로 이뤄낼 수 없다.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더는 대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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