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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고발하는 다큐 영화 줄이어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지난해 9년 만의 정권 교체 이후 과거 독재정부 시절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고발하거나 보수정권에서 감추고자 했던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속속 개봉하고 있다.
지난 달 개봉해 53만여 명을 불러들인 세월호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가 포문을 연 데 이어 서산개척단원들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서산개척단'과 5·18 당시 광주에 잠입한 독일인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이야기를 담은 '5·18 힌츠페터 스토리'가 뒤를 잊는다.



◇ '대한청소년개척단' 진실을 고발하는 '서산개척단'
1961년 박정희 정권은 '대한청소년개척단'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청년과 부녀자를 모집해 충남 서산의 황량한 갯벌을 농경지로 개척하는 일에 투입했다.
공식 명칭은 '대한청소년개척단'이었지만, 개척단원들은 자신들을 '서산개척단'이라고 불렀다.
이조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서산개척단'은 서산 일대에 정착한 개척단원들의 인터뷰를 통해 독재 정권이 자행한 국가폭력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전국의 부랑아·불량배·윤락녀 등을 설득해 개척단원으로 받아들였다고 발표했으나, 개척단원들은 태반이 대낮에 군인에게 끌려갔다고 증언한다.
1961년 부산에서 끌려간 정영철(77)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가족과 헤어져 건달 생활을 하다가 군인에게 붙들려갔다"며 "이후 서산개척단에 보내져 온갖 폭력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서산에 간 개척단원들은 온갖 폭력에 시달리며 중노동을 강요받았다. '어머니 사랑, 정신 보신탕'이라는 몽둥이에 수많은 청년이 죽었고, 뒷산에는 없던 공동묘지가 생겼다.
개척단에 끌려간 청년들은 1천700여 명에 달했으며 그 중 무작위로 남녀 225쌍은 강제 합동결혼식까지 올려야 했다.
이들은 단 1원의 인건비도 받지 못했지만 개간한 토지를 무상배분한다는 말을 믿고 서산개척단이 해체된 이후에도 개척사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는 서산간척지를 국유지로 등록했고, 이들은 한순간에 무단 점유자가 돼 버렸다. 김대중 정부 들어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가분배 계획만 있었을 뿐 시행령이 없었다는 이유로 패소하고 만다.
이조훈 감독은 2013년 추석 처음 서산으로 내려가 촬영을 시작했고 올봄에야 작업을 마무리했다.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인터뷰를 꺼리는 마을 어르신들을 설득하는 데만 2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이 감독은 18일 용산 CGV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개척단 어르신들의 상당수가 나는 당해도 싸다는 피해의식과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았다"며 "박정희 정권이 서산개척단을 어떻게 기획하고 이용했는지 드러난다면 어르신 스스로 자신의 삶과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서산개척단'으로 지난 12일 폐막한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가 담아낸 5월 광주
다큐멘터리 영화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도한 독일 공영방송 ADR 소속 카메라 기자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장영주 KBS PD는 2003년 5월 18일 'KBS 일요스페셜-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를 방영했다.
장 PD는 당시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미공개 장면을 덧붙여 극장판으로 재구성했다. 추가 확보한 자료들로 살을 붙이면서 러닝 타임은 50분에서 95분으로 늘어났다.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과 사진에는 당시 서슬 퍼런 광주의 실상이 그대로 담겼다.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광주 시민과 피 흘리며 쓰러진 동료를 들것으로 실어나르는 모습, 광주 진입을 막은 '작전차량 외 통행금지' 표지판이나 힌츠페터가 광주 탈출 과정에서 계엄군에게 검문을 당하는 모습도 그대로 기록됐다.
1980년대 지하 운동권을 중심으로 5·18 당시 광주의 실상을 담은 비디오 영상이 암암리에 상영됐는데, 이는 힌츠페터가 광주에 잠입해 촬영한 것이었다.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광주의 참혹한 진실을 전한 힌츠페터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 PD는 힌츠페터와 꾸준히 교류하며 새로운 자료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그가 찍은 미공개 영상을 확보했고, 영상에 담긴 현장음도 복원해냈다.
또 시민군으로 참여한 양인화·곽희성 씨를 비롯해 힌츠페터를 광주로 안내한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아들 김승필 씨, 힌츠페터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의 증언도 담아냈다.
여기에 배우 조성하가 재능기부 형태로 내레이션을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kind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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