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남·북·미, 서로 오판 않도록 상황 관리해야
(서울=연합뉴스) 남북 고위급회담의 연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북한의 으름장으로 '한반도의 봄'에 다시 냉기류가 흐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의 의도를 신중히 읽으면서 위기 징후를 진정시키려는 움직임이 한미당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속도 조절은 감수하지만, 협상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도록 하진 않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상황 관리에 나서기를 바란다.
백악관은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가 존 볼턴 안보보좌관의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 언급을 조준한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따르는 것은 리비아식이 아닌 트럼프 모델"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또 "북미 정상회담 개최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입장도 표명했다. '강 대 강' 대응을 피하며 북한의 경고음에 귀를 여는 제스처이다. 북한이 고위급회담 연기의 빌미로 삼은 한미 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에 당초 계획과 달리 미군 전략폭격기 B-52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공표됐다. 맥스선더 훈련이 연례적 방어 훈련이지만,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대규모로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군이 최첨단 F-22 스텔스 전투기 8대가 처음으로 훈련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정세를 고려 않고 관성적 자세로 임하지 않았나 되짚어볼 대목이다.
청와대는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열어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 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여러 채널을 통해 입장 조율에 나서기로 했다.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고 적극적인 북미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바람직한 대응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관통하는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이다. 목표를 위한 원칙은 고수해야 하지만 모든 협상에는 '역지사지' 정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슈퍼 매파'인 볼턴이 최근 '선(先) 핵 포기 후(後) 보상'에다 북핵의 미국 반출 구상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비핵화 해법을 강조하는 것이 협상 전술일 수 있지만, 핵을 포기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무아마르 카다피 사례 때문에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리비아 모델을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제어될 필요가 있다.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입장 표명도 트럼프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건드리지 않고 강경파인 볼턴만 '정밀 타격'하는 등 회담 판을 깨겠다기보다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임을 읽게 했다. 하지만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적 조치는 자칫 판을 깨는 관성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북측도 더욱 절제된 언행이 요구된다.
어떤 협상이든 기 싸움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느 정상회담과 다른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 신뢰 기반이 축적되지 않은 탓에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유리그릇 다루듯" 모든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오해가 오판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23∼25일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까지 연기되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한반도의 봄은 남·북·미 정상의 결단에 따른 '탑 다운' 방식으로 창출된 만큼 각국 내부의 강경·온건파들의 혼재된 메시지는 분별해서 읽고 상황이 관리돼야 한다. 22일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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