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관한 5가지 미스터리에 답하다
신간 '광주, 그날의 진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80년 5월 광주는 뜨거웠다. 그해 5월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전남대에서 계엄군과 학생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양측은 격하게 대립했고, 시민군은 5월 21일 계엄군이 물러나자 26일까지 치안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신간 '광주, 그날의 진실' 저자인 김형석 통일과역사연구소장은 5·18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시민자치가 실현된 닷새간 광주에는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로 인해 5·18에 관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고, 의혹이 인구에 회자하면서 미스터리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도 계엄군이 시민군에 밀렸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史實)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서 5·18 관련 미스터리 5개를 뽑아 '실증적 역사연구 방법론'으로 하나하나 검증한다.
첫 번째 미스터리는 '전남도청 지하실에 있던 8t 분량 폭약을 누가 설치했는가'다. 저자는 지역 일간지 기사와 법원 판결문을 분석해 5월 21일 김영봉 씨를 비롯한 13명이 화순광업소에서 폭약을 유출해 다음 날 광주로 옮겼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는 이어 1988년 국회 청문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의 진실도 파헤친다.
국방부가 1985년 무장한 폭도들이 장갑차와 화기를 동원해 교도소 주변에서 접전을 벌였다고 발표한 데 대해 "시위대가 봉기를 전남 일원으로 확산하기 위해 교도소 부근 동광주IC로 달려갔고, 교도소를 방어하던 군대가 이를 습격으로 오인하고 무리한 총격을 가해 항의성 무력시위가 벌어졌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다른 세 가지 미스터리인 20사단장 지휘차량 탈취 사건, 아시아자동차공장 차량 탈취 사건, 전라남도 38개 무기고 탈취 사건에 대해서도 북한군 소행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우리 사회에 무분별하게 퍼진 5·18 때 북한군이 광주에 내려왔다는 주장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5·18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 표면에 드러난 폭력 행위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남. 37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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