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거부' 안병하·순직경관 추모제…"당신들은 영웅들"
유족 "숭고한 희생 자랑스럽게 알리고 싶어" 울먹…38주기 추모식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죄인 아닌 죄인으로 오랜 세월 고통에 살았지만, 당신들은 죄인이 아닌 모두가 영웅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숨은 영웅' 고(故) 안병하 치안감 유족과 SNS시민동맹은 14일 오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경찰묘역에서 안 치안감과 당시 시위대와 대치하다 순직한 고 정충길 경사·강정웅 경장·이세홍 경장·박기웅 경장 추모식을 열었다.
안 치안감은 전남도경찰국장(현 전남지방경찰청장)이던 1980년 5·18 당시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고, 시위대에 치료와 음식 등 편의를 제공했다.
안 치안감은 이 일로 직위해제된 뒤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 끝에 1988년 10월 결국 숨을 거뒀다. 경찰청은 지난해 그를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하고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했다.
순직 경찰관인 고 정충길 경사·강정웅·이세홍·박기웅 경장 역시 당시 시위대를 강경진압하지 말라는 안 치안감 지시에 따라 시위대 버스행렬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숨을 거뒀다.
이른 초여름 날씨에 열린 이날 추모식은 고인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됐고, "38년 만이다. 고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생각하자"라는 추도사가 이어졌다.
경찰청 민갑룡 차장, 순직 경찰관 4명의 소속 관서였던 전남 함평경찰서 직원 등 50여명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민 차장은 추도사에서 "고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시민들을 보호하다 안타깝게 순직했다"며 "그 뜻을 이어받아 국민의 참된 인권경찰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자리에 모인 유족들은 마치 한가족처럼 그동안 겪어온 아픔을 함께 나눴다.
안 치안감의 아들 호재(59)씨는 "고인들은 소신 있게 공직자 생활을 했지만, 정부의 무관심에 마음이 아팠다"며 "최근 경찰청 등에서 명예 회복을 추진해나가고 있는데 경찰관이 본분을 다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충길 경사의 아들 원영(50)씨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가해자 아닌 가해자로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았다"고 말할 때 여러 유족들은 지난날을 돌이키듯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정씨는 "아버지의 죽음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큰 틀 안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아버지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어려운 시대에 역사에서 숭고한 희생을 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안 치안감 부인 전임순(85)씨와 강정웅 경장 부인 김춘자(78)씨 등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들은 목이 멘 듯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줘 감사하다"며 짧게 추모사를 마쳤다.
그동안 고인들의 추모식을 주관해 온 SNS시민동맹 등은 내년부터는 경찰청에서 직접 행사를 주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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