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법원, 공직진출 금지 해제 1년 앞당겨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1) 전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을 옥죄던 공직진출 금지 조항에서 해방됐다.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밀라노 법원은 전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변호인단이 낸 요청을 받아들여 그의 즉각적인 복권을 명령했다.

법원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복권에 필요한 선행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당초 내년까지 공직진출이 금지됐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당장 정계에 공식 복귀할 수 있게 됐다.
성 추문 의혹과 이탈리아 재정 위기 속에 2011년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13년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여파로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했고, 2019년까지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게 됐다.
2012년 제정된 일명 '세베리노법'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반부패법은 징역 2년 이상의 선고를 받은 사람은 최소 6년간 공직을 맡거나 출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 징역 4년형을 받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교정 시설 과밀을 이유로 형기 3년이 감형됐고, 나머지 1년은 고령이 고려돼 지역 복지 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그러나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그룹 메디아세트의 탈세 의혹은 반부패법 제정 훨씬 전인 1995∼1998년 벌어진 일이라 법을 소급 적용해 공직진출을 금지한 것은 부당하다며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소했다.
ECHR은 작년 11월 이 재판에 대한 심리를 개시했지만 밀라노 법원의 판결로 ECHR의 재판 결과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됐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마침내 5년에 걸친 부당함이 막을 내렸다"며 판결을 환영했다.
이번 판결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현재 진행 중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정당 동맹의 연정 협상이 결렬돼 이탈리아가 재총선 정국으로 진입하면 총리 후보나 상원의원으로 출마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협상이 국정 프로그램 협의 등에서 큰 진전을 보이며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관측돼 베를루스코니 측은 법원의 뒤늦은 판결에 가슴을 치고 있는 형국이라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지난 3월 실시된 총선을 앞두고 동맹 등 다른 3개 정당과 힘을 합친 우파연합의 승리를 위해 동분서주했고, 이 덕분에 우파연합은 총선에서 37%의 표를 얻어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우파연합 내에서는 반이민 정서를 등에 업은 동맹이 18%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14%에 그친 FI를 제치는 이변이 벌어졌고, 이에 따라 20년 넘게 우파의 맹주 노릇을 하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에게 우파의 주도권을 넘기는 굴욕을 당했다.
또, 이후 전개된 연정 협상에서도 이번 총선에서 32%를 득표,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세력으로 약진한 오성운동과 동맹의 결합을 가로막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오성운동은 "부패의 대명사인 베를루스코니와는 함께 정부를 꾸릴 수 없다"며 살비니 대표에 베를루스코니와 결별할 것을 요구했으나, 살비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양측의 연정 협상에는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았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결국 재총선 가능성이 점점 커지며 이탈리아의 정국 불안정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지난 9일 오성운동과 동맹의 정부 구성을 반대하지 않겠다며 뒤로 물러났고, 양측의 연정 협상은 이를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오성운동과 동맹은 13일 안으로 총리 후보 선택을 포함해 연정 구성 협상을 마무리한 뒤 이를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후 연정 구성안을 검토한 뒤 14일 총리를 지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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