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건국 70년…갈등과 분쟁의 역사
1947년 유엔분할안부터 논란…팔레스타인엔 '대재앙의 날'
(예루살렘=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이스라엘은 14일(현지시간) 건국 70주년을 자축하는 분위기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2천년 동안 유랑생활을 끝내고 나라를 세웠다는 의미가 크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 '나크바(대재앙)의 날'로 통한다.
시온주의 운동에 뿌리를 둔 이스라엘은 건국할 때부터 논란을 불렀다.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은 1897년 8월 29일 스위스 바젤에서 최초의 세계시온주의대회를 소집하고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시온주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시온(성서적 의미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다.
이후 유럽, 러시아 등에서 핍박받던 많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본격 이주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들에게 건국의 기회를 제공했다.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한 영국이 유대인과 팔레스인들에게 각각 모순된 약속을 한 점이 분쟁이 근원으로 작용했다.
벨푸어 선언은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11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건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영국 정부의 입장이 담긴 서한문 내용으로, 당시 영국 외무장관인 아서 벨푸어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주한 유대인 수가 크게 늘었다.
영국은 유대인의 힘을 활용해 미국을 참전시키려고 벨푸어 선언을 내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영국이 2년 전인 1915년 아랍 민족에게 약속한 '맥마흔 선언'과는 상충된다.
맥마흔 선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아랍 민족에게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하기로 한 선언이다.
결국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아랍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각각 세우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이 결의안을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거부했다.
결의안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전체 토지의 약 6%에 불과했지만 분할 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56%나 차지하게 된다.
아랍인들 입장에서 유엔 분할안은 매우 불평등했다.
유엔의 분할안으로 이스라엘 땅으로 규정된 지역에서도 아랍인들은 떠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군사작전 등으로 아랍인들을 추방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아랍권의 반대에도 텔아비브에서 건국을 선포하면서 쐐기를 박았다.
그 다음 날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됐지만, 미국의 최신무기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기울었고, 이후 1949년 2월 휴전이 이뤄졌다.
이후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과 1973년까지 3차례 더 중동전쟁을 치르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특히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른바 6일전쟁)에서는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 등으로 점령지역을 넓혔다.
이스라엘이 건국할 때 팔레스타인인 약 70만명이 다른 곳으로 쫓겨났고 이스라엘의 영토확장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은 계속 늘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에 따르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현재 530만명이나 된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현재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중동의 대표적인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유엔 등 국제사회를 무시하고 지나친 점령정책으로 팔레스타인을 탄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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