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할머니도 일당 8만원…"농촌 들녘 일손없다" 아우성
과일 알 솎기·모내기·선거 겹쳐 인력난 가중→품삯 상승
외국인 농부 '귀하신 몸'…지자체 너도나도 계절근로자 활용
(전국종합=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모(63)씨 복숭아밭에서는 요즘 열매 솎는 작업이 한창이다. 알이 굵어지기 전에 적당히 골라내줘야 영양 손실을 막고, 남은 열매도 튼실히 키울 수 있다.
시기가 정해진 일이어서 3만㎡의 복숭아밭을 모두 손보려면 하루 4∼5명의 숙련된 인부가 1주일가량 작업해야 한다. 이씨 부부 외에도 매일 2∼3명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꾼 확보가 급한 그는 인력사무소를 기웃거리지만, 갈 때마다 치솟는 인건비 때문에 부담이 크다.
올해 이 지역 품삯은 남자 10만원, 여자 7만원 선이다. 점심과 간식 등을 따로 챙겨주는 조건인데, 작년보다 1만원 가량 올랐다는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이씨는 "칠순 할머니라도 숙련도에 따라 하루 8만원까지 부른다"며 "치솟는 품삯을 감당하지 못해 친척이나 자녀를 불러 주말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과 주산지인 경북 안동지역 농민들도 일손부족을 호소한다. 어른 손톱만 한 크기로 자란 사과 알(열매)을 이달 중순까지 솎아줘야 하는데, 쓸만한 일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일부는 인력시장을 통해 외국인을 데려다 쓰고, 도시지역 아파트 단지에 '일손 구함' 게시물을 내걸어 인력을 조달하기도 한다.
안동시 임동면의 김모(52)씨는 "3년 전부터 인력사무소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베트남 농부를 데려오는 데, 올해는 식비와 교통비를 합쳐 하루 10만원을 요구한다"며 치솟는 인건비에 혀를 내둘렀다.
전남 장성에서 과수원 일을 하는 여성 품삯은 하루 8만원으로 작년보다 10%가량 올랐다. 일이 고된 양파 수확의 경우는 12만원을 부르기도 한다.
장성군 농촌인력지원센터 관계자는 "농사는 다 때가 있고, 그 시기를 넘기면 안 되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인력수요가 몰린다"며 "요즘 같은 극성수기에는 내·외국인 구분 없이 인건비 상승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과일 알 솎기, 양파 수확, 모내기 등이 겹친 농촌 들녘이 일손부족으로 시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품삯도 급등하는 추세여서 농사짓기 힘들다는 한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일손돕기 창구를 운영하고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확대하는 등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달 말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 적지 않은 인력이 선거판에 빨려들 것으로 보여 농촌 인력난이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경북도는 8개 시·군에 농촌인력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센터는 마늘·양파 수확과 과일 솎는 시기인 4∼6월, 추수철인 9∼10월 일손부족 농가에 공무원과 군인, 사회단체 임직원 등을 지원한다.
지난 4년간 이들 센터를 통해 지원된 인력은 연인원 6만3천명이다. 도는 올해 4만2천명을 추가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충북도는 2016년부터 유휴 노동인력을 중소기업과 농가에 지원하는 생산적 일손봉사를 추진하고 있다. 봉사자한테 교통비 명목으로 4시간당 2만원씩 지원하는 방식인데, 지난해 9만7천명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도 관계자는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농촌과 산업현장을 돕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따른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농촌 인력난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주목된다.
계절근로자는 결혼 이주 여성의 친정 가족이나 이웃을 초청해 최장 3개월간 영농현장에 취업시키는 제도다. 최저임금(일당 6만240원)에 맞춰 품삯을 계산하고 있어 부담도 덜 가는 편이다.
충북 영동에는 이달 초 베트남·캄보디아·중국 ·인도네시아·필리핀 국적의 계절근로자 41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7월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사과·배 알 솎기와 밭작물 수확 등을 도울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작년 처음 들어온 14명의 계절근로자가 좋은 반응을 얻어 올해는 초청 규모를 3배 늘렸다"고 설명했다.
충북에서는 괴산·진천·음성·단양·보은군 등에서 계절근로자를 운용한다.
강원도 춘천시, 화천·횡성군과 경북 영주시, 의성·청송·영양·성주군 등도 계절근로자를 데려와 부족한 농촌 일손을 메우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농사현장뿐만 아니라 어촌에서도 크게 환영받는다.
충남 서천군은 작년 63명의 계절근로자를 멸치 선별과 건조현장에 투입했다. 이곳은 2년 전 어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 도입 시범지역에 선정됐다.
태안군도 올해 100명의 계절근로자를 데려오기 위해 최근 몽골 성긴하이르한구와 협약했다.
군 관계자는 "내년부터 계절근로자 규모를 200명으로 늘려 인력난을 겪는 농어가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성민 손상원 이승형 박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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