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쓴 변호사 조광희 "현실 악당 그렸죠"
첫 장편 '리셋' 출간…돈과 정치·검찰 결탁 그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영화계에서 유명한 조광희(52) 변호사가 문학계에도 발을 들였다. 첫 장편 추리소설 '리셋'(솔출판사)을 펴내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 6년간 영화제작사 '봄' 대표로 일했고, 현재 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도 맡아 한다. 최근에는 직접 영화사 '파이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새 영화 기획·개발을 한다. 그 와중에 틈틈이 산문과 칼럼을 써 주요 문예지와 영화잡지, 신문 등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소설을 손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젊었을 때 많이 했는데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진척은 없었어요. 그러다 2년 전인가 진짜 써보고 싶단 생각을 하면서 안 써지는 이유를 알게 됐는데, 이야기 구성을 못 해서더라고요. 그게 문장을 쓰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내러티브 연구를 했고, 줄거리를 하나 쓰게 됐죠. 그때는 그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감이 잘 안 와서 놔두고 있다가 작년 여름에 다시 보니 말이 되는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조 변호사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첫 소설을 쓰게 된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줄거리가 일단 만들어지자 초고는 반 년 만에 후딱 썼다. 영화를 많이 보고 제작에도 깊이 관여한 경험은 소설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듯하다. 소설 속에 펼쳐지는 상황들이 영화에서 신(scene)이 이어지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이 소설을 읽은 분들이 영화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하네요. 쓸 때는 염두에 못 뒀는데, 아무래도 소설을 처음 쓰니까 '이런 식으로 묘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영화를 한 경험이 영향을 줬나 봐요."
이야기 주인공은 변호사인 '동호'. 그는 오랜 친구인 '승철'의 살인 사건 변호를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미안한 마음과 패배감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건너가 지내던 어느 날 과거 인연이 있는 서울시장으로부터 어떤 사건을 은밀히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전임 시장이자 현재 국회의원인 '민상철'이 과거 서울시 개발 인허가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낌새가 있다며 이를 자세히 알아봐 달라는 것이다.
동호는 옛 사무실 직원들을 불러 팀을 꾸리고 부동산 개발회사인 부학개발 '장 회장' 주변을 조사한다. 그 과정에서 비리를 폭로하려던 부학개발 전무가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어느 화랑과의 수상한 커넥션도 포착한다. 그러나 사건 전모에 깊숙이 다가가려 하자 장 회장 측에서 반격을 해오고 도리어 검사들을 동원해 동호를 엉뚱한 혐의로 구속하려 한다.
이 소설은 사건과 서사 중심 장르물이지만, 문장과 인물묘사가 탄탄해 데뷔작임에도 상당한 수준의 완결성을 보여준다. 현직 변호사로서 25년째 수많은 사건을 다루고 법정을 드나든 경험은 소설 곳곳에서 리얼리티를 풍부하게 살려준다. 이런 요소들 덕분에 엄청난 반전 없이도 이야기의 전체적인 흡인력이 크다.
"아주 새로운 얘기를 쓰기는 어렵고 모든 얘기가 비슷한 패턴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데, 제가 변호사이고 영화사 일을 했었고 선거 캠프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한 경험이 있으니 잘 아는 얘기를 종합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물 역시 제가 잘 아는 분야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주인공을 변호사로 설정했고요. 우리나라엔 탐정이란 직업이 없으니 변호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해서 탐정 추리물과 비슷하게 꾸몄지요."
소설에서 악의 축은 막대한 금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기업인, 그와 결탁해 조종당하는 정치인과 검사들이다. 이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 보여 독자를 더 분노하게 한다.
"여기서 악당이 검사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뒤에서 돌봐주고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식이거든요. 이런 결탁은 실제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봤어요. 수사기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결탁이 돼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도 그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더 두려운 점이 있는 거고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런 정도의 현실성 있는 악당을 실제 상황에 가깝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건은 결국 정의와 상식의 힘으로 해결되고 '리셋'되는 듯한데, 악에 대한 응징은 속 시원히 이뤄지지 않아 여운을 남긴다.
"해피엔딩에 가깝게 그리고 싶었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끝나는 사건은 없으니까 아이러니를 남겨놓은 것이죠. 그래도 정의와 상식이 굉장히 더디지만 조금씩 이겨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패배나 후퇴도 있겠지만, 사회는 점점 나아질 거라고 봐요."
그는 이번 소설의 반응이 좋으면 다음 작품도 써볼 계획이라고 했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법정드라마를 생각하고 있어요. 법정에 AI나 안드로이드 같은 존재가 등장하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법정 윤리 같은 문제를 탐구해보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독자를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잘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장르는 다양하게 자유롭게 써보고 싶고요."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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