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전통과 변화 사이…"신 카스트제도 폐지하자"
'공작' 11일 첫 공개…현지 매체 커버 장식
(칸<프랑스>=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올해로 71회째를 맞은 칸 국제영화가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다. 세계 최고 영화제라는 위상을 지키면서도,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칸영화제는 모든 영화인이 꿈꾸는 무대다. 베를린, 베니스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지만, 권위 측면에서는 다른 두 영화제를 압도한다.
칸의 이런 위상은 무엇보다 높은 문턱에서 출발한다.
일반 관객은 영화제 기간에 상영하는 영화를 관람할 수가 없다. 배우나 스타 등 영화 관계자들에게 돌아가는 초청장이 있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공식 상영 행사가 열리는 극장 앞에는 턱시도나 드레스를 차려입은 일반인들이 'Invitation(초청장)'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 가운데 일행이 갑작스럽게 참석하지 못한 경우 현장에서 일반인을 함께 데리고 입장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칸영화제 마켓에 판권을 사러 온 바이어들도 제법 비싼 돈을 주고 배지를 사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약 4천 명의 기자들도 예외가 없다.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거쳐 취재진에게 발급하는 배지에도 등급이 있다. 화이트, 핑크 도트, 핑크, 블루, 오렌지의 5개 등급으로 나뉜다. 칸영화제 취재 경험과 언론사 독자 수 등을 종합으로 따져 영화제 측이 등급을 매긴다. 어떤 색깔 배지를 받느냐에 따라 극장 입장 순서, 좌석이 달라지며 기자회견 취재 허용 여부도 결정된다. 칸영화제의 '신 카스트 제도'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이런 목소리가 올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칸영화제를 4년째 취재한다는 뉴욕 출신 프리랜서 작가 루빙 리앙은 "굴욕적인 카스트 제도를 없애자"며 세계에서 온 기자들을 상대로 온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500명 동참을 목표로 한 이 서명 운동에는 개막 사흘째인 10일(현지시간) 기준 222명이 서명했다.
루비 리앙씨는 "프레스 배지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칸영화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인 영화제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칸영화제는 올해 넷플릭스 영화도 경쟁 부문에 초청하지 않았다. 지난해 '옥자' 등 넷플릭스 영화 2편을 경쟁 부문에 초청한 뒤 엄청난 후폭풍을 겪은 탓이다.
당시 프랑스 극장업자들은 온라인으로만 배급하는 영화를 초청하는 것은 영화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영화 플랫폼이 전통적인 극장뿐만 아니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칸의 이런 방침이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
칸에서 만난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칸영화제가 정통성을 지키는데 무게를 더 두지만, 진행에 대한 기능적 향상을 꾀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고 평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 '에브리바디 노우즈'(개막작·이란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와 '레토'(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포함된 것도 이례적이다. 두 감독은 모두 정치적 이유로 가택 연금된 상태여서 칸에 참석하지 못했다.
'레토'의 유태오를 포함한 주연 배우들은 지난 8일 개막식 때 감독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법정 분쟁에 휩싸여 상영이 불투명했다가 10일에서야 상영이 확정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폐막작으로 선정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런 행보는 칸영화제가 오로지 예술성만으로 영화를 선정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칸영화제 나흘째인 11일 밤에는 한국영화 '공작'이 처음 공개된다. 전날 윤종빈 감독과 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도 칸에 도착했다. '공작'은 1990년대 북핵 실체를 파헤친 실존 안기부 첩보요원 흑금성 사건을 조명한 이야기로, 드라마틱한 남북 해빙 무드가 전개되는 가운데 선보이는 북한 소재 영화여서 관심이 쏠린다. '공작'은 이날 현지 매체 '스크린'의 1면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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