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 100일' 이재용 "멀리 보고 간다"…지배구조 개선 '주목'
글로벌 행보로 '오너 존재감' 부각…신사업 발굴·해외 네트워킹 집중
'총수 승계' 계기로 순환출자 해소·사업재편 통해 새 출발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 집행유예 선고로 풀려난 지 오는 15일로 딱 100일째를 맞는다.
검찰 수사와 규제 당국의 전방위 압박, 비판 여론 등으로 보폭을 충분히 키우지는 못하고 있지만 글로벌 행보를 중심으로 사실상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일단 오너의 존재감은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일각에서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 변경'을 통해 삼성그룹 총수로 '인정'한 이 부회장이 내친김에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 구조조정 등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13일 복수의 삼성 계열사 임원들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5일 석방 이후 일주일여 휴식 기간을 가진 뒤 약 2개월간 주요 사업부 현안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수차례 "회사 안팎이 어수선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꾸준하게 해나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노조 와해 문건, 에버랜드 공시지가 급등 의혹, 삼성증권 배당 착오 등 그룹 전반에서 악재가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를 밝히며 사업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이 불거진 최근에도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묵묵하게 일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삼성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흔들리지 말고 멀리 보고 가자"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현안 보고를 받은 뒤 이 부회장이 선택한 공식적인 경영 복귀 방식은 '해외 출장'이었다.
먼저 유럽과 캐나다를 방문해 인공지능(AI) 관련 현지 전문가들을 만난 데 이어 중국과 일본에서는 전기차, 정보통신(IT), 이동통신 업체의 대표들과 잇따라 회동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 그룹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앞으로 삼성을 이끌어 나갈 '오너'로서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행보였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상적인 사업은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에게 일임하되 그룹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신사업 발굴이나 해외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지난해 초 구속 이후 약 1년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그룹 지배구조 개선과 사업재편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의 오랜 와병에 공정위의 총수 변경으로 사실상 '그룹 오너'의 지위에 공식적으로 오른데다 더이상 미룰 경우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건 현 정부 임기 내에는 '삼성 암흑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10일 국내 10대 그룹 전문경영인 회동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결정은 이재용 부회장이 내려야 한다"며 공개 압박한 것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최근 삼성SDI의 삼성물산 주식 매각에 이어 조만간 삼성전기와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또 전자 계열사를 제외한 그룹 내 사업에 대한 재편을 통해 역량을 응집하는 동시에 새 출발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인데다 자칫 '보여주기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동시에 최종 판결 전까지 뭔가를 보여줌으로써 정부 압박과 비판 여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딜레마에 빠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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