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68년 적국', 통 큰 합의로 관계 정상화해야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하면서 한때 피어올랐던 북미 정상회담 궤도 위의 안개가 걷히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길게는 2년 반 가까이 억류된 미국인들을 석방한 것은 대미 관계 정상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북한의 강한 의지의 발로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협상에 나서는 데 대한 미국 내 반대 여론을 누르고 적극적인 대북 행보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승리'이다. 억류자 문제 해결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 후 68년 동안 '적국'이었던 양자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쌍방의 의지가 강하게 확인된 점은 주목해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2차 방북은 정상회담을 앞둔 여느 정상 국가들의 사전 협의 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 미 행정부의 외교를 책임진 국무장관이 북한의 공식 초청을 받아 방북했다. 사실상의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두 차례 회동했고, 북한은 폼페이오 일행을 위한 환영 오찬을 베푸는 의전을 선보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폼페이오 장관을 접견했다. 억류자 석방 절차도 북한은 미국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한 국무위원장 특별사면 형식을 밟았다. 대외정책에서도 법과 절차를 따른다는 외양을 갖춘 것이다.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호칭이나 표현도 사뭇 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폼페이오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깊은 관심이 있는 데 대해 사의를 표시했다"고 북한 매체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석방된 미국인들이 도착한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나가 "김 위원장에게 감사하다"고 언급했고,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합의를 원하고 있고, 뭔가 할 것이라 믿는다"며 진정성에 대한 믿음을 표했다. 또 "미국과 북한은 새로운 기반 위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이 대좌를 앞두고 신뢰의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또 폼페이오는 김 위원장을 '위원장'(Chairman)으로 칭했고, 미국의 독자 제재대상인 김영철 부위원장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폼페이오 방북 결과에 대해서도 북미 모두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부위원장에게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국이었다"면서 "이제 우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를 향한 위협을 치워버리며, 북한 국민이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가능성을 시사하는 언급이다. 북한 매체들도 폼페이오 방북을 전하며 북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회담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평가했다. 미국 관리들도 북미 정상회담 계획에 "실질적 진전이 있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폼페이오 방북이 끝난 후 양국에서 나란히 나오는 우호적 시그널은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양측의 간극이 어느 정도 해소돼 접점을 찾은 게 아니냐는 기대를 하게 한다. 북미는 실무회담을 한 차례 더 할 계획이라고 한다. 북핵 프로그램 검증·사찰 등 뇌관에 대한 '세부 합의'가 관건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항구적 동북아 평화를 향해 달리는 호랑이 등에 나란히 올라탄 형국이다. '디테일의 악마'에 현혹되지 말고 신뢰의 기반을 쌓으며 통 큰 합의로 '비핵화-평화' 종착지까지 함께 달려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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