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동맹 또 파열음…나토·기후변화·예루살렘 이어 핵합의
미국-유럽 균열 확대…"미국이 동맹에 신뢰 버린 날"
독일·프랑스·영국 강력반발…합의준수탓 미-유럽 '경제전쟁'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계속해서 삐걱댔던 미국·유럽 대서양동맹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으로 다시 부러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생긴 대서양동맹의 균열이 8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결정으로 한계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전임 행정부가 국제사회와 체결한 합의를 잇따라 번복하거나 파기, EU와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유럽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지난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유엔 '이주민 글로벌 협약'도 탈퇴한다고 밝혔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또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유럽 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방위비 추가 분담을 요구해 대서양동맹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근에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EU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문제로 EU 동맹국과 통상 마찰까지 빚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결정은 EU 국가들을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이란 핵 합의는 2015년 7월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 등 6개국과 이란이 체결한 협정으로, 이란이 전력생산 목적 외 핵 개발을 포기하고 유엔, 미국, 유럽연합(EU)이 부과한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 합의 탈퇴 경고에 거듭 반대 의사를 밝히며 설득에 나섰던 유럽 주요 당사국들은 미국의 이번 결정에 일제히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란 핵 합의를 지키기 위해 전념할 것이라면서 이란의 핵 합의 준수를 기대하며 그 대신 유럽 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제재 면제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와 독일, 영국은 미국의 결정에 유감"이라며 "비확산체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우려를 표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이란의 이익을 보호할 것이며 이란 핵 합의는 국제 외교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성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프랑스, 독일, 영국, EU가 미국의 탈퇴에도 이란핵합의를 당사자으로서 준수하기로 하면서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철강·알루미늄 관세폭탄으로 보복까지 운운하는 유럽이 제재 가능성에까지 직면하면 양측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에서는 쓴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현지 라디오에 출연해 "이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실책"이라며 "미국은 자국을 세계의 '경제 경찰'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에드워드 루스는 칼럼에서 미국이 이란 핵 합의 탈퇴를 선언한 이 날을 "역사는 미국이 동맹에 대한 신뢰를 버린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은 유럽 동맹국 없이 행동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진지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미국을 나머지 서방국가들로부터 고립시켰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2003년 허위정보를 토대로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독일과 프랑스의 미지근한 묵인 속에 영국과 스페인의 지지를 받고 행동에 나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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