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란 매파, 핵협정 파기의 궁극적 목표는 이란 정권 교체"
미국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진정한 비핵화' 논리에 냉소
"압박 통한 내부봉기 전략, 군사타격 전략 매파 의도대로 안될 것"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의 파기를 최종 결정한 것의 실제 목적은 이란의 핵 보유를 막겠다거나 중동에서 이란의 활동을 억제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란을 벌칙 구역에 계속 가둬놓고" 외부 세계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라고 미국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M. 월트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했다.
월트 교수는 8일(현지시간)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정권교체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그의 매파 보좌진이 이란 핵협정 파기의 이유로 내세우는 진정한 비핵화라는 '숭고한' 의지에 냉소하면서 이들의 파기 결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 내 매파, 이란의 반체제 조직 무자헤딘에-할크(MEK), 이스라엘과 미국내 이스라엘 로비세력중 강경파들을 대이란 강경파 연합 세력으로 규정했다. 이들의 궁극 목적은 정권 교체에 있지만, 경제 압박 강화를 통한 내부 봉기와 전복 유도 전략이든, 이란의 핵프로그램 재가동을 구실로 한 전쟁이든 정권교체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MEK는 이란의 망명단체로 미국 행정부의 테러리즘 감시단체에 올라 있으나 정치자금 기부 등을 통해 미 의회 내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에 대해 상당한 로비력을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이란의 핵폭탄 보유를 막겠다는 뜻이라면 기존 핵협정을 확고히 지키면서 궁극적으로 이를 영구화하기 위한 협상을 해나가는 게 훨씬 합리적인 결정이었으며, 시리아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원 등을 막을 요량이었으면 역시 핵협정을 지키면서 다른 나라들을 규합해 이란에 압박을 가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대이란 강경파는 미국과 중동의 동맹들이 이란을 역내 이해관계자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을 피하고 이란을 영원히 "고립된 세계 추방자"로 남겨두고자 한다는 것이다.
경제 제재를 강화해 내부의 민중 봉기를 유도, 이란의 신정 체제를 전복하는 전략에 대해 월트 교수는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란이 붕괴 직전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며 50여 년, 60여 년간 제재에 갇힌 쿠바와 북한이 건재한 사실을 들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제재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그는 "경제 압박이 상대를 협상장에 끌어내거나, 상대의 정책을 바꾸거나, 전시에 적국의 경제를 약화할 수는 있지만, 핵협정파기가 이란의 무릎을 꿇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 예상이 틀려서 지금의 신정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그 결과는 안정된 친미 정권이 아니라,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보듯 내전과 반란, 이슬람국가(IS)의 발호가 될 것"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소말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미국이 개입한 다른 사례들의 암담한 상황도 예시했다.
특히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를 지원한 것이 반미주의를 확산시켜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이어진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고 월트 교수는 말했다.
대이란 전쟁 시나리오에 대해, 월트 교수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에 폭탄을 떨어뜨릴 경우 이란인들의 첫 반응은 감사 같은 게 아닐 것"이라며 "이란 민족주의의 심화로 인해 현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굳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폭격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1~2년 늦출 수는 있겠지만 "이란인들은 유일한 안보대책은 자체 억지력을 갖추는 길 밖에 없다고 보고 핵 개발 노력을 배가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이란 핵협정 파기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포기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중대한 외교 실책으로 꼽았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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