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성동격서'인가…이란핵협정 파기로 北에 PVID의지 전달
플루토늄·우라늄 핵프로그램의 '돌이킬 수 없는' 폐기 의지 확인
볼턴의 남북비핵화공동선언 거론 주목…北보유 핵무기처리 향배 관건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발표한 이란 핵협정 탈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영구적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메시지를 북한과 국제사회에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식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얘기도 있다. 이란을 겨냥하는 척하면서 북한을 치려 한다는 것이다.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불리는 이란 핵협정을 트럼프 행정부가 반대한 핵심 논리는 이란 핵프로그램의 '전면 폐기'가 아닌 '통제'를 위한 합의라는 점이었다.
이란 핵합의가 보장하는 핵시설 검증의 강도는 전세계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합의 당사국들은 파기에 반대한데다 미 정권 교체후 기존 합의 파기의 선례를 남기면 북한에 대미 불신을 심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택한 것은 언제든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의 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또 이란 핵합의에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탄도 미사일 폐기 내용이 없어,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해 그걸 ICBM 등에 장착할 경우 미국이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협정 합의 파기의 핵심 요인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가 주는 대북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모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 행정부 핵심인사들이 잇달아 거론하는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대량파괴무기(WMD) 폐기', 즉 'PVID'와 연결돼 있다는게 외교가의 평가다.
다시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파기는 북한의 핵무기와 그 생산 프로그램, ICBM을 중심으로 하는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합의를 하겠다는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이란 핵협정 탈퇴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1992년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을 거론한 배경이 주목된다.
볼턴 보좌관은 "(우리가)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한 합의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북한이 1992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 핵연료의 전면과 후면을 제거하는 것, 즉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포기)"라고 말했다.
이는 영변 5MW원자로와 재처리시설 등에 기반한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원심분리기 등을 활용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등 북한이 구축한 두 갈래의 핵물질 생산 프로그램을 모두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는 목표를 시사한 셈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9일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 결정과 볼턴 보좌관의 말은 북한에 대해서도 '진짜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볼턴의 말은 북한의 기존 핵무기 폐기는 당연한 것이고, 더 이상 핵물질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영구적인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제1조가 핵무기의 시험·생산·접수·보유·저장·대비·사용 금지이기에 볼턴의 말에는 북한의 '보유핵'도 폐기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다만 1992년 남북 비핵화공동선언 당시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 핵무기'와, 탄도 미사일 문제를 미국이 대북 협상에서 어떻게 다룰지 주시해야 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만약 북미정상회담 계기에 ICBM 개발중단과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 폐기를 최우선시하고 기존 보유 핵무기와 한국·일본을 사정거리에 두는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 처리를 후순위 과제로 미룰 경우 북핵 타결이 되더라도 한일은 여전히 상당기간 북한의 잠재적 핵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는 전망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북한의 보유 핵무기 처리 문제를 시한과 함께 합의에 명시하는 한편 비핵화 과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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