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군인이 시민에게 총쏘는 모습 믿기지 않아"
美선교사 베츠 헌틀리의 5·18 기록물…양림미술관·옛 사택 전시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진 주검의 얼굴.
전쟁터 야전병원을 방불케 하는 광주기독병원 응급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손에서 손으로 옮겨지는 부상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院牧)으로 재직하며 항쟁 참상을 필름에 담은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목사의 기록물이 1일 광주 남구 양림동 옛 헌틀리 목사 사택에서 공개됐다.
헌틀리 목사는 아내와 함께 1980년 5월 항쟁 기간 광주 도심과 기독병원에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입은 참혹한 상처를 필름으로 기록해 사택 지하 차고에서 현상했다.
필름 일부는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기자 실존인물 위르겐 힌츠페터 등 외신기자와 해외 선교사 손에 전해져 광주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헌틀리 목사는 회고록 가운데 5·18 기억을 서술한 대목에서 "대한민국 군대는 시민을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수 군인은 특전사였다. 사람들이 병원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커다란 피멍이 든 채 자신들이 겪은 폭행을 증언했다. 그 누구도 왜 자기가 맞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고 모두 분노하고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목사이면서 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관찰자적 시각으로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 때문에 대학가 시위가 시민항쟁으로 치달은 5·18 본질을 꿰뚫어봤다.
헌틀리 목사는 시위군중이 시민군을 결성하게 된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상황에 대해서도 생생한 증언을 남겼다.
그는 "군인은 경고 사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람을 겨누고 쐈다. 겁먹고 분노한 시민 몇몇은 근처 마을 예비군용 무기고를 털었다. 이제 쌍방 모두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총상 입은 시체들이 병원으로 실려 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군인이 시민에게 총쏘는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시민들도 반격하고 있었다"라고 당시 기억을 서술했다.
헌틀리 목사는 계엄군이 '덤덤탄'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납 알갱이가 터져 인체에 심한 손상을 입히도록 고안된 덤덤탄은 잔인한 살상력 탓에 1907년 헤이그평화회의에서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지한 총알이다.
헌틀리 목사는 "병원에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듯한 부상자가 많았다. 환자들 엑스레이 사진을 봤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계엄군들이 사용한 총알들이 환자들의 몸 안에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온전한 총알이 몸에 박히는 것이 아니라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은 파편들로 쪼개져서 환자들의 팔, 다리, 그리고 척추에 꽂혀 있었다"라고 계엄군 잔학성을 고발했다.
그는 "시체들도 큰 충격이었다. 그 무명의 시체들을 봤을 때가 뚜렷이 기억난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비인륜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깨우쳐 준다"라고 부연했다.
헌틀리 목사는 광주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을 훗날 미국 정부에 증언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생을 마감한 헌틀리 목사 발자취가 담긴 기록물은 이달 8일까지 양림미술관에서, 9일부터 31일까지 사택 야외에 전시된다.
h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