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D-2] '종전선언' 주목하는 6·25 참전 노병 <프랑스>
92세 프랑스 노병 그리졸레씨 "화해무드 좋은 일…그래도 신중해야"
"한국인 저력은 용기·근면…보따리 매고 피난가던 모습에 마음 아파"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돼 기쁩니다. 남과 북이 한 자리에서 만나 평화를 논의하다니 좋은 일이지요. 그래도 항상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고 봐요."
한국전쟁 당시 두 차례 파병돼 수많은 전투를 치른 프랑스군의 백전의 노장 자크 그리졸레(Jacques Grisolet·92)씨는 최근의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한국은 늘 그에게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자랑스러운 자식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졸레씨는 24일(현지시간) 50년째 살고 있다는 파리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곧 있을 정상회담은 한국인들에게 좋은 소식이고 나도 기쁘다"면서도 "그래도 공산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리졸레씨는 20대 초반이던 1951년 3월 육군 중사 때 한국 파병 프랑스 대대에 배속돼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싸운 베테랑이었던 그는 한국 전장으로 옮겨 격전지에서 싸우다 프랑스로 복귀했다가 1953년 6월에 다시 한국 부대에 배속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원래 파병지였던 베트남을 거쳐 프랑스의 알제리 독립전투에 또다시 참전해 아프리카에서 6년을 보냈다. 전역한 뒤에는 공수부대 출신 군인의 경험을 살려 오랜 기간 항공학교에서 교관 등으로 봉직했다.
올해 아흔 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소년처럼 천진한 모습인 그리졸레씨는 "아직 북한의 김정은과 공산당을 잘 믿지는 못하겠다.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도 "그래도 한국인들을 위해서는 참 좋은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함께한 프랑스 한국전쟁 참전협회 로제 캥타르 사무총장도 "남북 해빙 무드는 일단 좋은 현상"이라면서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은 남북이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리졸레씨 같은 참전용사들은 아직 북한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캥타르 사무총장은 참전용사는 아니지만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부친이 작고한 뒤부터 이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현재는 그리졸레씨 같은 노병들을 자주 찾아 말동무도 해주고 협회 사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군의 한국에서의 전투와 이동경로 등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리졸레씨는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며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군복을 갖춰 입고 굳은 표정으로 선 자신의 옛 사진들을 꺼내 보여 줬다.
서울의 남대문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도 있었고, 태블릿PC에 군인 시절의 사진들을 저장해 심심할 때마다 찾아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에선 겁을 먹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당연히 무섭지만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국가보훈처의 초청 등으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작년 11월에는 한국전쟁의 전우 고(故) 장 르우씨의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에 참석차 한국에 다녀왔고, 손자들을 한국의 외국인 학생 캠프에 보내는 등 한국과의 인연의 끈을 소중히 지켜가고 있다. 작고한 처남도 프랑스군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10대 때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진격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다는 그리졸레 씨는 한국전쟁 때도 보따리를 매고 피난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국 생각이 나며 마음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한국인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이만큼 발전한 것이 경이롭고 무척 자랑스럽다는 그는 "한국인들은 참 용감했다. 전쟁 때도 살기 위해 온종일 열심히 일했다. 그게 한국인의 저력"이라고 강조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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