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ZTE 제재 vs 中, 미국산 수수 반덤핑…다시 불붙는 무역분쟁
中 첨단기술 겨냥한 美공격에 中 트럼프 지지층 '팜랜드' 정조준
(워싱턴·베이징=연합뉴스) 강영두 심재훈 특파원 = 미국이 16일(현지시간) ZTE를 제재하자 중국은 미국산 수수에 대한 반덤핑 예비 판정으로 응수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이달 10일 보아오 포럼에서 대규모의 개혁개방 조치를 발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에 감사를 표하며 잠잠해지는 듯 했던 미중 간에 다시 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에도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선공'이었다. 미 상무부는 북한·이란과 거래한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업체인 ZTE에 대해 향후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이는 이란 제재 위반으로 이미 11억9천만 달러(약 1조2천775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것과는 별도 조치로, ZTE가 과거 상무부 조사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 배경이 됐다.
ZTE는 2012년 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미국 기업들로부터 구매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 3천200만 달러 어치를 적법한 승인절차 없이 이란의 전기통신사업자인 TIC 에 공급한 혐의가 포착돼 상무부 조사를 받았다.
ZTE는 지난해 텍사스 연방법원에서 미국의 대이란 수출금지령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역대 최대금액인 벌금 11억8천만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당시 ZTE는 제재 위반에 가담한 고위 임원 4명을 해고하고 35명에 대해선 상여금 삭감 혹은 견책 등의 징계를 하기로 미 상무부와 합의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ZTE는 임직원을 질책하는 대신 보상을 함으로써 상무부를 오도했다"며 "이런 끔찍한 행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도 이날 ZTE를 겨냥한 조치를 내놨다.
영국 사이버보안 당국 관계자는 영국 이동통신사업자들에게 ZTE 장비 이용을 피하라고 경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중국 선전에서 설립된 ZTE는 세계 4위의 통신장치업체다. 중국 정부 관계기관들이 대주주와 주요 주주다. ZTE는 스마트폰·통신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25∼30%를 미국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자국 법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는 입장이나 중국으로선 무역분쟁의 와중 속에서 대중 공격으로 이해할만하다.
이 때문에 중국 상무부는 17일 오후 미국산 수수에 대한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리며 반격에 나섰다. 다분히 맞불 보복성 조치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미 행정부는 중국의 첨단 기술업체인 ZTE를 겨냥했고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라고 할 '팜 랜드'의 주요 농작물인 수수를 정조준했다는 점이다.
미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에 제동을 걸려하고, 중국은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ZTE 제재는 전형적인 일방주의이자 경제패권 행위라고 비난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수수의 덤핑 행위가 중국 내 관련 사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끼친다는 명분을 댔다.
중국 당국은 미국산 수수에 대해 오는 18일부터 보증금을 내는 방식의 예비 반덤핑 조치를 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미국산 수수 수입업자들은 덤핑 마진에 따라 최대 178.6%까지 보증금을 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중국 상무부는 "미국산 수수에 대한 조사를 계속 진행해 향후 덤핑 관련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라며 미국과 협상 여지를 남겼다.
왕허쥔(王賀軍)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이번 조치가 미국의 무역 보호주의에 대응 차원인지에 대해 "중국 법률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따른 조치로 미국산 수수는 중국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왕 국장은 "중국은 무역 규제 남용을 반대하며 WTO와 중국 법에 따라 해결하길 원한다"면서 "중국은 미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무역 분야의 갈등을 줄이며 중미간 경제 무역 분야에서 협력 유지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미국산 수수의 대중국 수출은 2013년 31만7천t에서 지난해 475만8천t으로 14배 급증했으며 미국산 수수의 대중국 수출 가격은 2013년 t당 290달러에서 지난해 200달러로 13% 하락했다. 중국 당국은 이 때문에 중국 수수 가격 하락을 불러일으켜 자국 수수 산업에 실질적 피해를 줬다고 판단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최근 미중 무역 갈등이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미국의 ZTE 제재가 다시 도화선을 당긴 격이 됐다"면서 "미국이 무역 관련 제재하는 만큼 중국도 동등 수준의 보복을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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